‘조선책략’을 다시 읽는다. 한반도 외교·안보 상황이 ‘19세기 조선말과 유사하다’는 경고를 자주 들어서다. 새삼 그 경고를 언급하는 것은 식상하다. 하지만 어쩌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해야 하는 저주를 받는다’는 스페인 출신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탸야나(1863∼1952)의 말에 책장 한구석에서 오랜 잠을 자던 책을 찾게 된다.
조선책략은 1880년쯤 일본 주재 청나라 공사관의 황쭌센(黃遵憲) 참사관이 쓴 책이다. 그는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간 김홍집에게 이 책을 주었다. 김홍집은 이를 고종에게 바쳤다. 당시 조선은 소용돌이치고 있는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이 책을 받아든 조선은 뒤늦게 외교정책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조선책략은 청나라의 이익을 위주로 기술됐다. 조선이 곱씹어야 할 값진 충고도 많았다. 당시 조선은 내우외환으로 골병을 앓는 중환자였다. 안으로는 최순실 게이트로 홍역을 앓고, 밖으로는 노골적으로 국익을 내세우는 강대국의 매파 지도자들에 둘러싸인 오늘의 한국도 당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지금이 더 어려운 처지인지 모른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조선이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대처했다면 한반도에 다른 역사가 펼쳐졌을 수도 있다.
연말이면 발간되는 신년 예측서들은 한결같이 불확실성을 강조한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전망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올해 예측서들의 고민은 더 깊어 보인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아산 국제정세 전망 2017’의 주제를 리셋으로 잡았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최대 이변 가운데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였다. 제45대 미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는 벌써부터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의 미국에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을 태세다. 중국은 내년에 19차 공산당대회를 연다. 집단지도체제의 오랜 전통을 허문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한은 더 집중될 것이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 100주년을 맞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강화는 예고된 수순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에 ‘권위주의자들의 귀환’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분쟁 중인 아프리카 남수단에 자위대를 파병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 만들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가만히 있겠는가. 북한은 올해 두 차례 핵실험과 핵탄두 운반수단인 미사일을 다양한 형태로 시험 발사했다. 북한은 내년에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위해 위험한 도박을 마다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들이 그려갈 내년 국제질서는 지극히 불확실하다.
사마천의 ‘사기’에 “치지기미란 위지기미유 환지이후우지 칙무급이(治之其未亂, 爲之其未有 患至而后憂之 則無及已)”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혼란스럽게 되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대책을 세워 막아야 하며, 우환이 닥친 뒤 걱정하면 늦다는 뜻이다. 강자를 상대해야 하는 약자가 앞날을 살펴 미리 대응방안을 준비하지 않으면 명운이 갈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의 한국이 앞날을 살펴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권 획득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은 앞날을 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한국의 시각에서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대국가전략과 외교·안보 방책을 담은 ‘신조선책략’을 마련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내일을 열며-최현수] ‘新조선책략’이 필요하다
입력 2016-12-28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