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뤼미에르 “檢 ‘미인도’ 비과학적 안목감정에 의존 ”

입력 2016-12-27 17:53 수정 2016-12-27 21:35
검찰이 고(故) 천경자 화백의 진품으로 결론 내린 ‘미인도’에 대해 프랑스 감정업체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광학연구소의 장 페니코 소장이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위작 판정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미인도와 다른 작품들의 눈 흰자위 안료 두께값을 수치화한 것이다. 미인도는 이 수치가 92.50으로, 다른 작품들의 평균값인 183.17보다 크게 낮다는 것이 뤼미에르 측 주장이다.
고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 진위 공방이 재점화됐다.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광학연구소(이하 뤼미에르 연구소)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한국 검찰이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린 데 대해 반박하기 위한 자리다.

뤼미에르 연구소는 앞서 검찰에 “진품일 가능성은 0.00002%”라는 감정보고서를 제출했으나 검찰이 자신들이 낸 ‘첨단과학 감정결과’를 완전히 부정하는 발표를 한 데 따른 것이다. 뤼미에르 측의 이날 회견은 감정방식의 과학성을 강조하는데 집중됐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것이 갖는 ‘오류와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반박 자료를 내는 등 진위 공방이 다시 뜨거워지는 형국이다.

페니코 소장 “과학적” 강조했지만

기자회견에는 뤼미에르 연구소의 장 페니코 소장,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씨와 사위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 공동변호인단의 배금자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유족 측은 “검찰이 과학 검증을 했다고 하지만 DNA 검사에 실패했고 웨이블릿(붓질 정도) 검사 결과로 아무것도 밝힌 것이 없다. 적외선과 X선 검사 이외에 이렇다 할 과학 검증을 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안목감정’과 ‘소장경위확인’, ‘위조범 권춘식 진술’이라는 주관적 요소에 의존한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진품 판정을 했다는 것이다. 배 변호사는 “검찰 결론은 중간발표에 불과하다”며 검찰 조사에 불복해 항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페니코 소장도 “뤼미에르 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다중 스펙트럼 고화질 카메라를 개발해 1650층의 단층을 들여다보는 기술을 보유했다”면서 “반면 검찰이 활용한 적외선 촬영은 세밀한 층간 연구를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검찰 결론을 깎아내렸다.

이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방식이 얼마나 과학적인지를 확률화한 수치를 통해 제시했다. 미인도 작품의 콘트라스트(명암대조값), 눈의 흰자위 두께, 휘도, 눈동자의 지름 등을 비교 대상인 다른 9개의 그림과 비교하고, 문제의 미인도의 확률적 수치가 다른 것과 크게 차이가 나므로 위작이라는 주장을 폈다. 예컨대 미인도 눈 흰자위의 두께 수치는 92.50으로 다른 작품들의 평균 값인 183.17의 절반에 그쳐 진작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검찰이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린 근거인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 밑층에 숨겨진 다른 밑그림의 존재 등에 대해서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천 화백의 사위 문 교수가 “저도 화가다. 압인선은 두껍게 안료를 사용하는 채색 동양화가들이 스케치 라인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도 압인선이 나올 확률이 높다”며 증거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을 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오류와 모순” 반박

국립현대미술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뤼미에르 연구소 측이 낸 보고서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했다. 미인도의 밝기 분포(명암대조값)나 눈의 흰자위 두께 등이 비교대상인 9개의 작품과 유사해야 진품이라는 뤼미에르 연구소 측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명암 대조값이 다른 작품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미인도 진품 확률이 0.0002%, 눈의 흰자위의 두께 수치의 차이만으로 진품 확률이 0.006%라고 밝혔는데, 이런 공식이라면 다른 9개 작품들은 100% 확률이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은 진품확률 공식 자체에 오류가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또 진품확률 계산에서 상관관계에 있는 ‘명암대조 표준편차값’과 ‘최대 엔트로피값’을 곱했으나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수학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뤼미에르팀 주장에 대해 “자신들이 감정한 결과가 채택되지 않자 검찰 수사를 비과학적이라고 표명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검찰은 “다양한 방식의 과학감정 및 안목감정, 미술계 전문가 및 사건 관계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 뿐 아니라 소장이력까지 추적한 결과 진작이란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뤼미에르 연구소 측의 공신력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주임교수는 “대조군으로 삼은 그림 9점에 대해 진위 판정을 분명하게 내리지 못한 가설을 그럴듯하게 과학적인 분석인 것처럼 포장한다”고 지적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