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중·고교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어정쩡한 ‘국·검정 혼용’으로 바꾸면서 학교 현장은 이념전쟁의 한복판으로 내몰리게 됐다. 교과서 선정을 두고 교육부 대 교육감, 교육감 대 학교, 학교 재단 대 교사, 학교 관리자 대 교사, 학생·학부모 대 학교 등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갈등 양상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뜨거운 감자 ‘연구학교’
교육부가 27일 발표한 ‘국정 교과서 현장 적용방안’은 국정 교과서를 폐기 않고 별도 연구학교에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연구학교는 새 교육과정이나 정책 등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지정·운영된다. 학교당 1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지원되고 교원들은 승진 가산점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국정 교과서를 거부하는 교사와 승진 가산점이 절실한 교사의 이해가 엇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학교 재단이나 교장·교감 등과 교사 집단의 갈등도 우려된다. 역사 교사 90% 이상은 국정 교과서를 반대한다. 사립학교 재단이나 교장·교감 분위기는 다르다.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는 지난달 30일 국정 교과서 도입 찬성 입장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전국 1653개 초·중·고교를 운영하는 900개 학교법인 이사장 모임이다. 지난 7일에는 전국 1600여 사립 중·고교 교장들이 국정화 찬성 성명을 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감의 갈등도 한층 격렬해질 전망이다. 학교들은 교육부와 교육감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전국 교육감 17명 중 14명은 이미 국정 교과서 차단에 나선 상태다. 교육부는 교육감들이 학교장에게 압력을 가해 연구학교 지정을 방해하면 강력 응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검정도 국정처럼”
이 때문에 3년 전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보다 혼란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당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에 비난이 폭주해 결국 채택 철회로 물러나는 등 상당한 홍역을 겪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교육부가 물밑에서 확산 작업을 지원하다 실패한 케이스다. 이번 국정 교과서는 직접 만든 데다 노골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서 파열음이 더 클 전망이다.
교육부도 혼란을 우려한다. 교육부 일각에선 차라리 국회에서 국정 교과서 금지법을 빨리 통과시켰으면하는 반응도 나온다. 교육부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자성도 적지 않다.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제작 가이드라인인 편찬기준 수정을 거부한 점도 갈등 요소다. 2018년 적용을 앞두고 개발되는 검정 교과서에도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항일투쟁과 임시정부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역사학계의 비판을 받고 있는 용어다. 교육부는 수정을 거부하고 있다. 이대로는 국정 교과서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검정 교과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박 전 대통령 서술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통과시켜주지 않을 수 있고, 이럴 경우 집필진이나 출판사가 받는 타격이 크다. 자체 검열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교육부 ‘양다리’에… 학교현장 ‘이념 전장’ 속으로
입력 2016-12-27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