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낮엔 김정은 만세, 밤엔 이불 쓰고 한드 보는게 北 현실”

입력 2016-12-27 18:03 수정 2016-12-27 21:40
지난 8월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한 뒤 “통일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27일 “낮에는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워장) 만세’를 외치면서도 저녁에는 이불 쓰고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북한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김정은이 있는 한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1조 달러, 10조 달러를 준다고 해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망명해 국내로 들어온 태 전 공사는 27일 오후 통일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자신의 망명 사유와 북한 체제의 실상, 향후 포부 등을 밝혔다. 고위급 탈북자가 남한 기자들 앞에 선 건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이후 19년 만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주민통제하면서 하다하다 못한 게 마약과 한류”라며 “북한 사람치고 한국 드라마, 영화 못 본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는 사람마다 다르다. 저같이 공부한 사람은 역사물을 좋아한다”면서 ‘불멸의 이순신’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징비록’을 언급했다.

한류 콘텐츠가 북한 주민 사이에 보편화돼 젊은이들 사이에서 남한 말씨가 유행할 정도라고 태 전 공사는 소개했다. 문자메시지에 ‘자기야’ ‘오빠야’ ‘할거야?’ ‘ㅋㅋㅋ’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런 표현을 쓰면 검열을 담당하는 ‘109소조’가 휴대전화를 압수하지만 20∼30달러만 내면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하게 되면 북한 체제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명분과 정체성을 중시한다”면서 “김정은이 맏아들이 아니고, 김정일에게 여러 여인이 있었으며, 김정은과 김여정이 그 여인들 중 한 명의 자녀라는 자료가 북한 내부에 들어가면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는 유지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2004년 사망)는 북한 체제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태 전 공사는 소개했다. 고용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식 부인도 아닌 데다 북한에서 홀대 받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내부 강연 자료를 만들면서 자기 어머니를 ‘선군조선의 어머니’라고만 지칭했을 뿐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민감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북한 인원은 태 전 공사 같은 재외공관원과 일부 외무성 직원뿐이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식 통치방식을 ‘공포선행(先行)통치’라고 규정했다. 그는 “인간이 가진 공포심리를 이용해 공포감을 사전에 조성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일 때는 넥타이 맨 보안요원들이 공손히 주민들 신분증을 검열했다”면서 “지금은 이들이 군복 입고 총을 차고 들여보낸다. 내가 직접 기관총구 앞을 지나가며 ‘아차 실수해서 방아쇠 당기면 순간 몸이 날아가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망명 전 대(對)언론 활동을 했던 태 전 공사는 이번 기자간담회에서도 시종 여유로운 태도였다. 쏟아지는 질문을 피하지 않고 모두 대답해 당초 1시간 정도로 예정됐던 간담회가 2시간30분으로 길어졌다. ‘플러스’ ‘인센티브’ ‘퀄리티’ 등 영어 표현도 자주 섞어 썼고, 한 기자가 영어로 질문을 하자 역시 영어로 답변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3만명 탈북민의 ‘김정은 타도’ 외침이 임진각에 울려 퍼질 때 통일의 아침이 밝아올 것”이라면서 “통일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