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새누리당 민경욱 의원은 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을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상향 조정하는 아동학대특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아동학대범에게 엄벌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미 아동학대치사죄의 법정형이 형법상 살인 및 존속살인보다 높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에도 유사한 법안이 나왔다가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고, 결국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돼 폐기됐다. 이전 사례만 확인했다면 개정안의 내용이 달라졌을 수 있다. 민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하기 전 관련 공청회나 토론회를 여는 등의 노력은 없었다. 개정안은 5개월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19대 국회의 형사법 분야 의원입법안 가결률은 4%에 불과하다. 27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사법 분야 의원입법의 성과와 한계’에 따르면 2012년 5월 30일부터 올해 3월 31일까지 의원이 발의한 형사 관련 입법안은 836건이었다. 여기에는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특별법 등 형사와 관련된 사항이 규정된 모든 법률이 포함됐다. 836건 중 절반 이상인 509건이 계류(미처리)된 반면 가결안은 36건으로 전체의 4%에 그쳤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정부 제출안 가결률(34.7%)이나 위원장이 제안한 법안 가결률(99.6%)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형사 관련 법안 가결률이 낮은 원인 중 하나는 무조건 형량을 가중시키는 법안이 쏟아져나온 데 있다. 처벌규정 관련 법률안 중 88%인 458건이 새로운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 신설과 법정형 상향 등 처벌 강화 내용이었다. 법정형 상향의 경우 죄형균형의 원칙 등을 고려해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관행처럼 일단 법정형을 높이는 법안을 내고 의정 실적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를 진행한 김한균 연구위원은 “예컨대 청소년성보호법 중 중범죄의 경우 이미 살인죄만큼 형량이 높은데도 의원입법안은 형량 가중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며 “법안을 발의할 때는 법정형 상향이 다른 방법에 비해 쉽겠지만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의 전 면밀한 법안 분석·평가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법안비용추계제도다.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형사입법안 발의는 늘었지만 이에 대한 예산 추계서를 첨부하는 경우는 여전히 적다. 법정형을 늘리면 교도소 증설과 재소자 증가로 인한 예산 확대가 뒤따른다.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형사법 관련 입법안이 쏟아지다보니 내실 있는 의견을 받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관련 기관과의 협업과 형사입법영향평가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경우 연간 150건 이상 형사입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보내는데도 반영 결과가 어찌됐는지 회신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한균 연구위원은 “입법기관과 연구·지원기관의 협업 체계를 강화해야 가결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의원들이 발의 단계부터 형법 전문가나 입법조사처와 활발히 교류하는 게 필요하다”며 “법원 또한 형사사건 양형 자료를 내놓는다면 형사 입법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기획] 19대 국회 형사법분야 의원입법안 가결 고작 4%… 이래도 괜찮나?
입력 2016-12-2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