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34개 시·군 중 4곳은 가축방역관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규모 농가 방역을 위한 정부의 가축방역공동방제단은 비정규직으로 운영되면서 전문성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AI 발생은 전문적인 방역 인력 부족이 빚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7일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가축방역관이 없는 곳은 70곳이나 됐다. AI가 발생한 시·군(34개) 중엔 경기도 김포, 충북 괴산, 전남 해남과 진도에 가축방역관이 없다. AI 발생지 10곳 중 1곳은 방역을 관리·감독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셈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 지역축협을 활용해 운영하고 있는 가축방역공동방제단 역시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계약직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규모 축산농가 방역을 지원하기 위한 공동방제단은 전국적으로 450개가 있다. 그러나 관련 사업 지침에 따르면 축협은 1인당 보조금 한도 이내에서 방역 요원을 채용해야 한다. 1인당 보조금은 월 185만원으로 정규직을 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정부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방역 업무를 전담하기보다 다른 업무를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계약직 채용을 권고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방역소독 업무는 전문성이 굳이 필요 없기 때문에 계약직을 써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역 현장 일선의 목소리는 다르다. 남원축협 강병무 조합장은 “계약직을 채용해 2년이 지나면 방역기술 향상은 물론 지역 축산농가 사정에 익숙해진다”면서 “그러나 재계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을 축적한 이 직원 대신 신규 계약직을 뽑아 쓰고 있다”고 했다. 남양주축협의 경우 방제사업단 직원이 일이 고되다며 7월 갑작스럽게 퇴사한 뒤 부득이 정규직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정부는 계약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건비 지급을 거부했다. 남양주축협 관계자는 “하루 15개 농가를 방문해 방역작업을 했는데 정규직 수준 급여는커녕 지원 한도 내 인건비도 정규직이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농식품부에서 아무리 방역을 강화해도 일선 현장에서는 이를 총지휘할 가축방역관이 없고, 농가 곳곳을 방문하는 공동방제단도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김 의원은 “AI 사태 조기 종식과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방역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단독] 전문성 없는 방역 AI ‘대란’ 키웠다
입력 2016-12-27 17:39 수정 2016-12-27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