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동양요리학원은 국내 유일의 입시전문요리학원으로 유명해졌다. 학생들이 각종 요리대회에 입상해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하는 등 수강생 상당수가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이 대학은 가는데 오래 다니지를 못했다. 한 학기가 지나면 대학을 자퇴하거나 휴학했다. 대학의 커리큘럼은 대부분이 이론과 실기자격증 위주이다 보니 이미 자격증이 3개 이상인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며 쉽게 자퇴해 버렸던 것이다.
고민 끝에 아예 대학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일정한 학점을 이수하면 대학 또는 전문대학 졸업을 인정해주는 학점은행제가 있었다. 정규대학은 아니지만 가정형편상, 그리고 시간이 여의치 않아 대학을 다니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제도다. 요리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일반 성인 학습자들을 위해 과목 단위로 수강하고 기본 학점만 채우면 전문(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커리큘럼은 학점은행제 제도가 제시하는 표준교육과목으로 편성하고, 현장에 맞는 실기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2007년에 학점은행제 학습과목 운영기관 평가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난관에 부닥쳤다. 전세로 있던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낙찰을 받아야 했다. 낙찰 가능한 입찰 금액을 정해야 했다. 문숙정 당시 부원장이 여러 사안을 고려해 입찰 금액을 제시했다. 이를 놓고 기도하는데 그날 밤 꿈을 꿨다. 꿈속에서 숫자가 나타났다. 이는 부원장이 제시한 금액에서 1000만원 정도가 줄어든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금액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입찰 금액이 차 순위로 낙찰 받지 못했다.
창피했다. 학원 관계자들에게는 물론 수원 시내 모든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역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 부원장에게 “호텔 셰프가 꿈인 학생들을 위해 우리 차라리 서울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두세 달 지났다. 서울 가산동의 아파트형 공장을 소개받았다. 아파트형 공장인데다 2층이어서 학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일단 330㎡(100평) 정도만 임대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장소를 보고 내려오다 분양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직원이 이왕이면 학원이니까 1층을 임대하라고 했다. 991㎡(300평)이라고 했다. “원래는 평당 1850만원인데, 1300만원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이야기만 잘하면 평당 600만원에도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나는 집에 와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은행에서 90%까지 융자를 해준다고 했으니 1억8000만원만 있으면 임대할 수 있었다. 이튿날 일찍 분양 사무소를 찾았다. 평당 600만원에 계약하자고 했더니 그 직원은 “어제는 그냥 해본 이야기”라고 말했다.
어이없었다. 마침 그 직원의 상급자인 대표가 나타났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 대표에게 “이 사람이 내게 거짓말을 해서 나를 능멸했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 대표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평당 600만원은 어렵고 1350만원까지 해주겠다고 했다. 싫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1100만원을 제시했다. 약속대로 하라고 했다. 옥신각신하다 결국 680만원까지 내려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역경의 열매] 윤경숙 <5> 학점은행제 운영기관 인정 받고 서울로 옮겨
입력 2016-12-27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