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압수수색은 필연적 수순이었다. 박근혜정부의 ‘왕실장’으로서 각종 전횡의 정황이 나온 데다 최순실(60)씨 일당의 국정농단 역시 그의 비호 내지 묵인 아래 이뤄졌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 전 실장은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의 예봉을 피했다. 검찰은 그를 소환하거나 강제수사하지 못했다. 특수본은 “우리도 잡고 싶지만, 뚜렷한 범죄 혐의가 나오지 않는다”고 수차례 토로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도 김 전 실장은 우선 수사 대상이면서도, 가장 넘기 어려운 난제로 꼽힌다.
특검 수사관들은 26일 오전 7시쯤 김 전 실장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 압수수색영장을 내보이고 진입했다. 2층 단독주택의 안방과 서재, 거실 등을 차례로 훑었다. 한 수사관이 장대를 들고 정원을 수색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압수수색은 김 전 실장이 집 어딘가에 감춰뒀을 권력남용의 기록을 찾는 데 집중됐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청와대 2인자로 군림했다. 최씨가 비선 권력이라면,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의 지시를 청와대 참모진과 각 부처를 통해 수행하는 공개된 권력이었다. 그는 2014년 10월쯤 당시 김희범(57)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실·국장 6명에게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특검팀은 이를 폭로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을 최근 접촉해 진술을 들었다. 김 전 실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생산의 정점으로도 지목돼 있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4년 6월∼2015년 1월 비서관 회의 내용을 적은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문화·언론·법조계 장악 기도를 주도하는 흔적이 곳곳에 등장한다.
특검팀은 그가 김종(55) 전 문체부 2차관, 차은택(47) 문화융성위원, 송성각(58·구속)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 이른바 최순실 사단의 발탁 과정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도 규명할 방침이다. 이들은 모두 김 전 실장의 면접을 거쳐 고위공직자에 임명됐다.
“정상적 직무 수행”이라는 김 전 실장의 방어논리를 깰 범죄의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해서도 “알지 못한다” “나는 관련이 없다”는 답변으로 위원들의 질의 공세를 버텨냈다. ‘법률 미꾸라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법망을 빠져나갔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檢·국조 뚫은 ‘법률 미꾸라지’ 김기춘… 특검 그물은?
입력 2016-12-27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