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전자제품은 곁에 있었다. 반짝 등장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제품도 있었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제품도 있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대변되는 라디오나 비디오게임은 1980년대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었다. 흑백 TV나 벽돌을 닮은 전화기는 실제보다 더 선명한 UHD TV와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TV 사업으로 승승장구하던 샤프, 파나소닉 등 기업들은 주력 사업을 변경해 새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과거엔 로고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삼성, LG 등 국내 기업들은 어느새 첨단 기술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 달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50주년을 맞는다. 전 세계 기업들이 1년간 출시할 신제품들을 소개하고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앞장서는 중요한 자리다. 이번에는 3800여개의 업체가 전시에 참가해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드론, 가상현실·증강현실 제품 등을 소개한다. 국내 기업들도 각 부문별 수장들이 참석해 내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라디오와 흑백 TV로 채워진 전시장
CES는 1967년 여름 뉴욕에서 처음 시작됐다. 117개의 전시장은 라디오, 흑백 TV로 채워졌다. 당시 박람회에 참가한 기업은 TV 사업을 주력으로 하던 파나소닉, 샤프, 모토로라 등이 대표적이었다. 오디오와 스테레오 장비, 리모콘 등은 당대의 혁신적인 제품으로 여겨졌다. 관람객 1만7500명이 최첨단 기술을 체험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1970년, CES에는 VCR(영상 카세트 녹화기)이 등장했다. 필립스가 선보인 VCR은 녹화와 재생 기능으로 이용자가 영상을 소비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오디오 장비들은 좀더 고도화되고 가벼워졌다. 턴테이블의 등장은 다양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했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게이밍 장비들도 전시됐다. 히타치, 샤프, 파나소닉, 이후 파나소닉의 자회사가 된 산요도 CES에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CES는 1978년부터 라스베이거스로 옮겨 전시를 이어간다.
비디오게임 등장, 디지털 시대 개막
80년대에는 1400여개의 업체가 참여할 정도로 CES의 규모가 크게 성장했다. 지금은 오랜 추억으로 여겨지는 게임들이 최신식 비디오게임 형태로 선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게임 ‘테트리스’와 ‘던전앤드래곤’ 게임이 전시장에 등장했다. 늘어선 비디오게임기에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광경이 연출됐다. ‘포켓몬고’로 재도약을 꿈꾸는 닌텐도도 전시장에 모습을 보였다.
선 없는 전화기, 카 오디오, 초기 모델의 컴퓨터 등도 주요 전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CES 전시장에서 눈에 띄게 커진 규모를 자랑했다. 디지털시계는 패션과 기술의 결합체로 여겨졌고, TV와 오디오로 구성된 홈시어터 기기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때부터 ‘디지털’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90년대에는 DVD 플레이어부터 고화질 HD TV 등 지금의 전자제품들의 초기 모습을 갖춘 제품들이 등장했다. PC와 PDA, DVD 플레이어, 닌텐도 게임, 세가(SEGA)사의 비디오게임 등이 전시장에서 공개됐다. 위성 TV는 수많은 채널들을 집 안으로 들여왔다. AOL은 인터넷의 선구자로 전화선 기반의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다이얼 부분을 열고 닫을 수 있는 플립폰도 첫선을 보였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1998년 CES의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경계 넘나드는 제품들, ‘융합’ 가속화
2000년대 들어 3D프린터와 드론 등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제품들이 CES에 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비디오게임기 ‘X박스’, OLED 패널 등이 CES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자동차도 전시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 기업들은 저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선보이며 미래 자동차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50주년을 맞는 CES 2017에는 ‘융합’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가상현실·증강현실 기기, 드론과 로봇 등이 주요 신제품으로 소개될 것으로 보인다. 기조연설에는 자동차, 반도체뿐 아니라 선박, 의류 업체의 수장들이 참여한다. 단순한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밀접하게 적용되는 서비스가 전시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CES] 지구촌 첨단 기술의 향연 전자제품 역사 스며 있다
입력 2016-12-28 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