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하기 위해 26일 밤 출국했다. 2차 대전 전범국이라는 역사적 멍에에 종지부를 찍고 미·일동맹 관계를 강조하겠다는 의도를 앞세웠지만 취임 4주년(26일)을 맞아 장기 집권과 개헌이라는 기로에서 외교력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다.
아베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7일 낮(현지시간) 진주만 애리조나기념관에서 희생자에게 헌화하고 묵념한 뒤 소감을 발표한다. 미·일 정상이 함께 진주만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은 처음이다. 애리조나기념관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애리조나 함선 위에 세워졌다. 당시 미군 2400여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중립을 깨고 참전했다.
아베는 이곳에서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결의와 미·일동맹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발 전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 관계자를 만나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자민당 한 고위 관계자에겐 “전후 총결산을 하고 싶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마이니치신문은 아베가 일본의 전쟁 책임이나 희생자에 대한 사죄 등은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베의 방문은 지난 5월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에 ‘답방’하는 형식이지만 일본 내 지지율을 유지하려는 노림수 중 하나로도 분석된다. 아베는 지난달 닛케이신문의 여론조사에서 58%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인기가 높다. 여기엔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제 정책과 적극적 외교 정책이 바탕이 됐다. 하지만 지난 15일 열린 러·일 정상회담에서 쿠릴열도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문제에 대해 결정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며 지지율 하락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방문은 다음 달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과 맞물려 미·일동맹 관계가 굳건히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베는 지난달 17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트럼프와 만났고 취임 1주일 뒤인 다음 달 27일쯤 정상회담도 추진하고 있다.
닛케이는 “진주만 방문 성과는 트럼프의 의향에 달려 있다”면서 “트럼프가 진주만을 방문하면서 사죄는 하지 않는 것에 불쾌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당시 “왜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에 대해 논의하지 않느냐”며 비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진주만 가는 아베… 사죄 발언 없을 듯
입력 2016-12-26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