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0)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동시 압수수색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정부의 조직적이고도 부당한 문화예술계 영향력 행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서기관이 특검에 임의동행한 것으로 확인됐고, 블랙리스트 정황이 최초로 회의에서 언급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압수수색 장소에 포함됐다.
“사이비 예술가, 발붙이지 못해야”
26일 특검 압수수색영장에 적시된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지난 12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사실과 관련해 특검에 김 전 실장, 조 장관 등을 고발하며 거론한 죄명이다. 고발인들은 ‘세월오월’의 홍성담 작가에 대한 사찰, 광주비엔날레 개입, 세월호 침몰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 압박 등을 특검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랙리스트에는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 1만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김 전 실장의 지시 표기와 함께 “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조치 강구,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글귀가 있다. “문화예술가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시 내용도 적혔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이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블랙리스트의 시발점으로 이미 지목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블랙리스트가 “김 전 실장을 통한 다음 정무수석실을 통해, 그다음 모철민 수석(전 교육문화수석)을 거쳐 김희범 차관(전 문체부 1차관)에게 내려왔다”고 폭로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도 이날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2014년 6월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며 작성 지시자로 김 전 실장을 지목했다. 유 전 장관은 “리스트 (형식) 이전에 구두로, 수시로 김기춘 실장 지시라고 모 수석이나 김소영 비서관(전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게 두 번 항의”
문화예술계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이들의 진술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맨 처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였다. 도 의원에 따르면 권영빈 전 문화예술위원장은 지난해 5월 “예술위원들이 추천해서 책임심의위원들을 선정하면 해당 기관에서 그분들의 신상을 파악해 ‘된다,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실제로 비협조적인 문화계 인사들이 정부 지원에서 소외됐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문화예술위원회는 교문위 요구에 따라 회의록을 제출했지만 미르재단 강제모금에 대한 불만 표출 부분, 권 전 위원장의 블랙리스트 발언 등이 삭제된 상태였다.
특검은 정부 비판적 문화예술인에 대한 검열이 사실이었는지, 문화계를 주무른 비선실세들이 배경이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직접 두 차례 항의했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박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블랙리스트 지시는 당초 약속(반대파까지 포용하자는 내용)과 다르다”는 의견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는 “(면직되기 직전인) 7월에 박 대통령을 다시 만나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계속 쳐내면 나중에는 한 줌도 안 되는 같은 편 갖고 어떻게 일을 하시겠나’라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현수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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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부당 개입 의혹… 김기춘·조윤선 ‘정조준’
입력 2016-12-26 17:36 수정 2016-12-27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