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이제 학생부로 간다] 학생들의 수업 아이디어·실행 내용 구체적으로 기록

입력 2016-12-26 17:30 수정 2016-12-26 20:50
노란 날개를 단 소녀상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께 보낼 메시지를 빼곡하게 적고 있는 인천 부개여고 학생들. 지난 22일 ‘희망나비 프로젝트’란 제목으로 진행된 융합 수업은 국어 실용영어Ⅱ 한국사 미술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 만들었다. 인천=윤성호 기자
대학 입시에서 학교생활기록부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학생부 위주인 수시 모집 비중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4년제 대학들은 내년 입학 정원의 73.7%를 수시로 뽑는다. 학생부 공신력이 입시 공정성과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국민일보는 학생부 혁신으로 경쟁력을 높인 학교들을 찾아가봤다. 기록의 힘은 컸다. 학생은 물론 교사들도 변화를 실감하고 있었다.

역사 시간이지만 교과서 대신 찢어진 종잇조각과 풀 가위 등 공작도구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학생 네댓끼리 모여 앉은 교실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스마트폰을 검색해 친구와 공유하면서 수다를 떠는 아이도 있었다. 교사는 조용하게 아이들 주변을 걸으며 지켜볼 뿐이었다.

지난 22일 찾은 인천 부개여고 1학년 역사 수업은 미술 시간 같았다.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께 보낼 메시지 보드를 만들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손톱만한 풀잎을 오려붙이고 있었다. 풀잎 2개를 나란히 붙이자 사람 하나가 서 있는 발자국이 됐다. ‘위안부’ 할머니다. 주변으로 발자국이 늘어나다 나중에는 종이를 빼곡하게 채웠다. 학생들은 “할머니 혼자가 아니란 뜻”이라고 말했다.

미술·영어도 협업한 역사 수업

‘희망나비 프로젝트’란 제목으로 지난 20일부터 나흘간 이 학교에서 진행된 융합 수업 모습이다. 국어 실용영어Ⅱ 한국사 미술 교사들이 머리를 맞댔다. 국어 시간엔 영화 ‘귀향’을 감상하고 소감문을 썼다. 영어에선 해외 사이트를 돌며 왜곡된 ‘위안부’ 관련 내용을 찾고 홍보 문구를 영작했다. 한국사와 미술 수업은 전시회 준비였다. 한국사에선 할머니들께 보낼 메시지 보드, 미술에선 당시 아픔을 표현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미술시간, 한 그룹은 ‘꽃무덤’이란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영화 ‘귀향’에서 영감을 얻었다. 입술에 피를 묻히고 평온히 잠든 소녀가 그려져 있었다. 소녀 그림의 여백은 무궁화로 화려하게 치장됐다. 무궁화는 한지를 찢어 분홍색 물감으로 표현했다. 학생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예쁘게 꾸며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 공간은 교복 입은 현대 여학생이 과거 ‘위안부’ 소녀를 안아주는 작품, 거대한 손으로 형상화된 일본 제국주의에 잡혀 눈물 흘리는 소녀 등 작품들로 하나둘 채워지고 있었다.

배경자 부개여고 교장은 “교내외 다양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정규 교과가 바뀌어야 교육이 달라진다. 이 수업은 위안부란 주제를 정규 교과에 녹인 시도”라고 말했다.

콘텐츠 있는 학생으로

학생 일거수일투족은 학교생활기록부에 담겼다. 미술 교사인 양애숙(55·여)씨는 “물건을 그냥 그리기보다 주제가 있으면 몰입도가 다르다”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행하는 과정에는 아이들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학생부도 풍성해진다”고 말했다.

이 수업은 어떻게 학생부에 담겼을까. 한 학생부에는 “조장으로서 모호했던 주제에 대해 토론을 이끌며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했다”고 쓰였다. 다른 학생부에는 “작품 활동이 시작되자 소극적인 모습에서 탈피,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추도록 한지 등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미적 감각을 보였다”고 썼다. 어떤 학생부에는 “미적 감각이 부족하다고 선언, 도구 등이 부족하지 않도록 공급하고 청소를 도맡으며 밝은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했다. 미술 시간에는 보조적 역할을 했지만 국어 시간에 멋들어진 소감문을 써낸 아이나 해외 사이트에서 왜곡 부분을 집어내는 남다른 능력을 보여준 학생도 있었다. 과목마다 학생이 어떻게 접근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학생부에 기록됐다.

역사 교사인 박정순(43)씨는 “암기하고 시험 보면 교사는 편해도 아이들은 남는 게 없다”며 “사회에 나가서도 위안부란 주제가 나오면 콘텐츠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동료 교사들과 수업 설계부터 평가·기록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인천=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