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FC 산타클로스’의 선물

입력 2016-12-27 04:06
핀란드 라플란드주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의 산타클로스가 2014년 11월 5일 FC 산타클로스의 훈련에서 볼을 차고 있다. FC 산타클로스 페이스북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그들은 엘프(산타클로스를 돕는 요정)처럼 차려입고 눈이 쌓인 그라운드를 누비며 볼을 찬다.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감독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플레이를 지켜본다. 이 별난 클럽은 핀란드의 FC 산타클로스다. 실력은 형편없다. 3부와 4부 리그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지난 9월 25일(현지시간) 열린 AC 카자아니와의 3부 리그 경기에선 무려 0대 16으로 참패했다. 그날 버스로 4시간이나 걸리는 원정경기에 나선 선수는 딱 11명이었다. 그중 3명이 골키퍼였다. 많은 선수들이 생업 때문에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애초 크게 질 수밖에 없었던 경기였다. 성적이 아니라 꿈을 좇는 이 클럽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FC 산타클로스는 1993년 핀란드 최북단 라플란드주 로바니에미에서 창단됐다. 당시 클럽 창립자들은 클럽명을 고민하다 ‘산타클로스’로 결정했다. 인구 6만5000여명의 이 소도시에 산타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약 50만명의 관광객이 산타마을을 찾는다. 산타마을의 산타클로스는 너무 바빠 FC 산타클로스의 모든 경기를 보러 오진 못한다. 하지만 홈경기가 열리면 시축을 하곤 한다.

FC 산타클로스는 2010년 전성기를 구가했다. 3부 리그 정상에 올라 2부 리그 승격을 눈앞에 뒀다. 3개 팀이 참여한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FC 산타클로스는 헬싱키 HIFK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막판 골을 허용한 바람에 승격에 실패했다. 이후 FC 산타클로스는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2012년 파산했다. 팀이 해체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구단은 전 세계에서 투자를 끌어들이며 활로를 모색했다.

FC 산타클로스는 2016 시즌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실력 있는 선수들이 떠났으며 설상가상으로 부상 선수도 속출해 22경기에 2승2무18패(승점 8)를 기록, 12개 팀 중 11위에 그쳤다. 총 24골을 넣었고, 102골이나 내줬다. FC 산타클로스의 성적이 바닥을 치자 홈 팬들은 실망했다.

하지만 외국에선 관심을 보였다. 이탈리아에서 팬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홈구장을 찾았다. FC 산타클로스는 현재 500여명인 클럽 유료회원을 5000명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있다. 스포츠용품 업체인 푸마는 파트너십 계약에 합의했다. 1년 전 중국의 멀티미디어 회사인 ‘비윈 스포츠’가 5년간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FC 산타클로스는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베이징노동자경기장에서 탤런트 등 중국 유명 인사들로 구성된 팀과 자선경기를 했다.

FC 산타클로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주하 에텔라이넨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클럽과 25년 동안 함께하고 있다”며 “우리 선수들과 직원들은 모두 특별하다. 산타처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년 FC 산타클로스는 4부 리그로 내려간다. FC 산타클로스는 최근 핀란드 국가대표 출신인 베사 타우리에넨 감독을 영입하며 재기에 나섰다. 타우리에넨 감독은 어린 선수들로 팀을 재편해 내년 2부 리그 승격에 도전한다. FC 산타클로스가 널리 알려지며 전 세계에서 선수들이 입단 테스트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 FC 산타클로스의 모토는 ‘신념을 잃지 말라’이다. 축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