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불황에 ‘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치면서 대기업들이 내년도 투자나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해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되면 고용시장도 얼어붙으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층의 취업문이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타깃으로 지목되면서 연말에 이뤄지던 정기 인사나 내년도 사업 계획 등 아무것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임원 인사는 사실상 무기 연기된 상태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내년도 투자나 고용 계획이 전혀 예측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특검 때문에 늦춰지는 분위기라 일단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직 준비된 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내년 채용 규모도 불투명하다. 올 하반기에는 예년과 비슷한 1만명 정도를 뽑았지만 ‘특검 리스크’ 탓에 당장 내년 상반기 채용을 미루거나 채용 인원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만큼 삼성그룹 전체에 불확실성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연말 정기 인사가 내년으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업 계획은 최근 법인장회의에서 논의됐지만 역시 인사가 보류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짓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채용 계획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업 계획 등은 인사와 맞물리는 게 있어서 구체적으로 나온 게 없다”며 “채용은 내년 경기를 봐야 하기 때문에 감소나 증가를 확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CJ와 롯데그룹도 안갯속이다. CJ 측은 수감돼 있던 이재현 회장이 지난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면서 연말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회사는 아직 인사 시기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회장이 ‘특혜 사면’ 의혹을 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있다.
CJ 관계자는 “인사는 이르면 10월부터, 늦어지면 2월까지 간 적도 있다”면서도 “늦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업이나 투자·고용 계획에 대해서는 “지난해에도 발표하지 않았다”며 “불확실성이 커서 기조를 어떻게 잡을지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롯데도 임원 인사가 해를 넘길 전망이다. 롯데 관계자는 “사업 계획 등은 계열사별로 수립하는 중”이라며 “원래라면 지금쯤 확정돼야 하는데 연말 상황이 불안정해 예년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그룹과 SK그룹은 다소 활력이 있어 보인다. LG전자는 LG 시그니처 브랜드와 올레드(OLED) TV 등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성과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신규 투자나 채용 규모는 내년 초 확정키로 했다.
사업 계획을 정리 중인 SK그룹은 내년 2∼3월 중 채용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SK는 내년에도 고용을 늘린다는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주요 대기업들 외에 조선 해운 건설 등 전통적인 고임금 업종에서 불황이 깊어지는 것도 고용시장 불안요인이다. 수주절벽에 시달리는 조선업계는 내년에도 생존 자체가 화두여서 채용은 극히 일부에 그칠 전망이다. 건설업계도 해외시장 침체와 국내 주택시장 포화로 채용 전망이 불투명하다. 한진해운이 사실상 해체된 해운업종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기업이 채용을 줄이면 임금과 복지 등에서 질 좋은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청년들의 취업 의지도 꺾이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업 25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최고경영자 경제 전망 조사’에서 투자를 축소할 계획이라고 답한 기업이 10곳 중 4곳(39.6%)으로 가장 많았다. 올해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기업은 33.3%, 확대한다는 기업은 27.1%였다. 내년 채용 규모에 대해서는 46.2%가 올해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축소 35.8%, 확대 18.0%였다.
글=강창욱 심희정 김혜림 허경구 기자 kcw@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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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2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