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 기업이라는 문패가 ‘멍에’처럼 느껴져요. 오해를 살지 모르니 회사 이름은 쓰지 말아주세요.” 한 지방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해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준비 중인 A씨는 25일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창업의 길’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일자리 창출, 청년 창업 등을 목표로 내놓은 정책들은 표류 중이다. 전국 17곳에 세워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창조경제’에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창조경제혁신센터 내 직원들은 일할 의욕을 잃었다. 한 지역센터 담당자는 “자금과 기술지원을 하던 대기업들은 몸을 사리고 있고, 우리도 대놓고 업무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지난 1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내고 태생적 한계를 지적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정치적 산물’로 보는 시각 때문에 2년 후 정권이 바뀌면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센터 내 상당수 직원도 “정권 교체 후 존립 자체가 불확실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시각은 입주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정부가 내놓은 대학창업펀드는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이 투자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역 기업이나 동문을 통해 창업자금을 조성하도록 도와주는 게 대학창업펀드다. 사업을 주관하는 교육부는 내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현장에서는 기대를 버렸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정부보다 앞서 서울과 부산에서 각 대학이 별도의 펀드를 진행하고 있다. 뒷북 정책인 것도 모자라 지금 정국에서 진행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호 가입자’였던 청년희망재단의 청년희망펀드는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당시 대기업과 은행의 임직원 등은 울며 겨자 먹기로 펀드에 가입했다. 하지만 수익은커녕 매월 빠져나가는 돈에 속앓이를 한다.
정부는 ‘일자리 정책’ ‘청년 창업’이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에 정권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일축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름은 바뀌더라도 지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창조경제혁신센터 덕에 벤처기업 수는 늘었고 삭감이 예상됐던 예산도 오히려 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청년 창업가의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비판도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김대중정부 시절의 벤처붐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어지지 못해 ‘거품’이라는 오해를 사게 됐고, 결국 거품처럼 사라진 벤처기업도 많았다”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이러려고 창조경제 외쳤나… ‘최순실 직격탄’ 맞은 혁신센터
입력 2016-12-2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