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군대합창단’ 탑승 러 군용기, 시리아 위문공연 가다 흑해 추락

입력 2016-12-25 19:37 수정 2016-12-25 21:17
러시아군을 대표하는 합창단인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이 지난 3월 모스크바에서 공연하는 모습.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소치 인근 흑해에서 발생한 군용기 추락 사고로 이 합창단 단원 중 64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사고기와 같은 기종인 투폴례프(Tu)-154. AP뉴시스
러시아 군용기가 25일 오전(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소치를 출발해 시리아 라타키아로 향하던 중 추락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 소속 투폴례프(Tu)-154 항공기는 소치의 아들레르 공항에서 오전 5시25분 이륙한 지 불과 2분 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비행기에는 승객 84명과 승무원 8명 등 92명이 탑승해 있었다.

승객 중 64명은 군 합창단인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단원이었다. 볼쇼이, 돈코사크 합창단과 함께 러시아 3대 합창단으로 꼽히는 팀으로 해외공연도 자주 다녔다. ‘붉은군대 합창단’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이들은 시리아 흐메이밈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러시아 군인 위문공연을 가던 길이었다.

나머지 승객 중에는 러시아 기자 9명과 자선활동으로 유명한 여의사 옐리자베타 글린카도 있었다. 글린카는 시리아 병원에 의약품을 갖다 주려고 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흑해 연안 1.5∼8㎞에 걸친 여러 지점에서 탑승자 일부 시신과 소지품, 기체 잔해 등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은 생존자가 없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락 원인은 테러보다는 기체 결함이나 조종사 실수로 추정된다. 러시아 상원 국방·안보위원회 빅토르 오제로프 위원장은 “군용기이고 러시아 영공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테러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리아로 향하던 항공기여서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 문제와 연관된 보복 공격이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을 일축하는 발언이다.

러시아 수사기관 당국자도 “기체 고장이나 조종 실수가 유력한 원인으로 검토된다”고 말했다. 사고기는 1983년 생산돼 6000시간 이상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지점의 당시 기상 상황은 양호해서 악천후로 인한 사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항공기 엔진으로 새가 들어가 고장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사고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됐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수색·구조 활동을 지휘하고 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