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 주자인 이재명(사진) 성남시장이 복지 확대로 전체 소비를 늘려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한국판 뉴딜’ 구상을 내놨다. 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와 정부예산 절감으로 연간 50조원 규모의 복지 재원(국민일보 12월 22일자 1면 참조)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의 연장선이다.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기에 시행됐던 뉴딜정책(댐 건설 등 대규모 토목공사로 일자리를 만들어 소비를 늘리는 것)에서 따온 말이지만 이 시장의 ‘한국판 뉴딜’은 정부의 직접 자금지원 확대에 방점을 찍어 전통적 뉴딜과는 실행 방식에서 차이가 크다. 전문가들은 일자리와 투자가 동반되지 않은 채 복지 지출을 늘리면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져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
이 시장은 2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공황 극복에 50년 장기 호황 기초를 만든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해법은 독점 해체와 공정한 경쟁질서 회복, 복지정책, 노동권 강화 및 가계소득 증대였다”며 “국민 주머니를 채워 유효수요(실질적인 구매력을 가진 수요)를 확충하고, 공정경쟁으로 의욕을 되살려 경제 선순환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해법도 동일하다”며 “복지 확대는 경제성장의 마중물”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을 대공황 수준의 ‘경제위기’로 규정하고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한 복지 확대와 재벌 개혁을 해법으로 제시한 셈이다.
‘한국판 뉴딜’의 특징은 복지 확대를 경제성장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통상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사회간접자본(SOC) 및 신산업 투자→일자리 창출→소득 증대→소비 활성화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중간 고리’가 빠졌다. 대신 청년배당·기초연금 같은 정부의 직접 자금지원으로 취약계층의 소득을 늘리면 소비증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복지 지출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고, 가계소비와 기업 생산을 모두 활성화시키는 경제난 해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본소득제’(모든 국민에게 소득 수준이나 고용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액을 지급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이 시장의 복지대책 패키지에 포함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가 지난 6월 말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본소득을 양극화 해법으로 내세운 이후 야권 잠룡들도 기본소득 논의에 뛰어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모든 국민에게 생애 주기에 맞춰 수당을 지급하는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소득증대 방안만 강조할 경우 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 등 재원 대책도 조세저항을 불러와 추진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5일 “정부 지출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면 소비 증가와 세금수입 모두 기대할 수 있지만 ‘일자리 없는 복지’가 확대되면 정부 재정적자를 늘리고 성장동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유효수요를 극대화하려면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에게 집중해서 지급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일자리 없는 복지… 이재명式 ‘뉴딜’ 지속성 의문
입력 2016-12-2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