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팔레스타인 자치령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미국이 기권함으로써 가능해진 결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끼어들어 무산시키려 했으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이 정면충돌했지만 결국 오바마의 의중대로 관철된 것이다. 유엔의 결의에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은 환호했고, 이스라엘과 트럼프는 강력 반발했다.
안보리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과 동예루살렘에서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이스라엘에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14표, 반대 0표, 기권 1표로 통과시켰다. 안보리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령 안에 정착촌을 짓는 게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팔 관계를 회복하려면 모든 정착촌 건설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은 “역사적인 결정”이라며 크게 반겼다.
표결에서 기권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혼자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의안 채택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서 이스라엘은 오바마 행정부에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가 여의치 않자 트럼프에 도움을 청했다. 결의안 반대 의사를 공공연히 밝혀온 트럼프는 안보리 순번의장국인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표결을 연기하도록 압박했다. 이에 22일로 예정된 표결이 돌연 연기됐다.
하지만 다음 날 표결이 진행됐고, 오바마 대통령의 뜻대로 미국은 거부권 행사 대신 기권을 택했다. ‘제대 말년’인 오바마가 기세등등한 트럼프를 이긴 셈이다.
트럼프는 결의안 채택 직후 트위터에 “(내가 취임하는) 1월 20일 이후 유엔에 관한 일들은 달라질 것”이라는 글을 올려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24일에도 트위터에 “어제 유엔에서 이뤄진 이스라엘에 관한 큰 손실은 평화협상을 훨씬 어렵게 만들 것이어서 아주 나쁘다”고 썼다.
유엔 결의로 직격탄을 맞은 이스라엘은 거세게 반발하며 결의안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 기구 분담금 납부와 유엔 대표부 존치 등 유엔과의 모든 교류를 재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년 동안 여러 사안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충돌했던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와 밀월 관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함께 이란 핵 합의 폐기에 나서겠다고 밝힌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에도 “터무니없는 결의안을 무효화하는 데 트럼프와 미 의회 친구들과 협력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의 기대대로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느슨하던 것에서 강력한 동맹 관계로 회귀할 전망이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과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일부 의원도 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유엔, 이스라엘 정착촌 제동… 오바마 최후의 일격
입력 2016-12-26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