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펄펄 나는 ‘오빠’-쩔쩔 매는 ‘람보’

입력 2016-12-26 04:01
서울 삼성의 센터 김준일(오른쪽)이 25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의 2016-2017 프로농구 경기에서 SK 가드 김선형의 슛을 막고 있다. 뉴시스
서울 삼성 이상민 감독(왼쪽 사진)과 서울 SK 문경은 감독(오른쪽 사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 사령탑이다. 하지만 올해 정 반대의 행보를 겪고 있다. 이 감독이 승승장구하며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반면 문 감독은 어느 때 보다 추운 겨울을 겪고 있다.

이 감독과 문 감독은 1990년대 초중반 한솥밥을 먹으며 연세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이들의 인기는 요즘 아이돌 스타를 능가했다. 수많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고, 경기는 대부분 매진됐다. 이 감독은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로써 경기 운용 능력이 뛰어났다. 문 감독은 장거리 슛이 일품이었다. 이 감독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년 연속 KBL 올스타 팬투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문 감독이 보유 중인 통산 3점슛 1669개는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대기록이다. 곱상한 외모를 가진 이 감독이 ‘영원한 오빠’라고 불렸고, 뛰어난 슈터였던 문 감독은 ‘람보 슈터’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먼저 사령탑에 오른 사람은 1년 선배인 문 감독이었다. 문 감독은 처음 지휘봉을 잡은 2012-2013시즌에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올려놓았다. 당시 모래알 조직력이었던 SK의 체질을 확 바꿔 강팀으로 만들었다. 문 감독은 다음 시즌에도 3위를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 감독은 2014년 사령탑에 올랐다. 그것도 문 감독의 SK와 서울 라이벌인 삼성 감독에 선임됐다. 하지만 혹독한 감독 데뷔 시즌이었다. 처참한 경기력으로 팀이 꼴찌에 머물렀다. 라이벌이었던 문 감독이 지휘하는 SK가 3위에 올라 아픔이 더했다. 항상 정상에 있었던 이 감독의 자존심에도 생채기가 났다. 이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내가 팀을 잘못 이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책이 심했다. 감독 자리를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삼성은 6위에 오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반면 SK는 9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올 시즌 완전히 이 감독 쪽으로 기울었다. 이 감독은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삼성을 가드 왕국으로 만들며 팀을 단숨에 강팀으로 올려놓았다. 선두권에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문 감독은 선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한숨을 쉬고 있다. 외국인 선수 두 명을 모두 교체하는 강수까지 뒀지만 경기력이 여전히 오르지 않고 있다.

두 감독은 크리스마스인 25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맞대결을 벌였다. 삼성이 71대 66으로 승리하며 이 감독이 활짝 웃었다. 이 감독은 이날 승리로 17승6패를 거두며 단독 선두로 뛰어 올랐다. 반면 문 감독이 이끄는 SK는 6연패에 빠지며 7승16패를 마크, 9위로 추락했다. 시즌 첫 만원 관중 앞에서 역전패를 당한 SK는 충격이 더욱 컸다.

문 감독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10여점 차로 이기고 있다가 역전패를 당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성탄절 맞아 팬들도 많이 오셔서 연패에서 탈출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며 “1쿼터를 준비한대로 잘 풀었는데 3∼4쿼터 실책이 몰려나오며 상대에게 역습을 제공해 주도권을 넘겨준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공격이 흔들려 어려운 경기를 했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활짝 웃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