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진술조력인 제도 시행 3년째 성적표는?

입력 2016-12-26 04:06

지적장애 2급인 김영민(가명·15)군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시설 종사자로부터 수년간 상습적인 폭행을 당했다. 지난 9월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김군은 대화를 일절 거부했다. 낯선 환경에 겁을 먹은 김군은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전평가를 통해 진술조력인은 김군이 평소 종이접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진술조력인은 종이접기를 하며 대화를 유도했다. 김군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고 학대를 당한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진술조력인은 이처럼 표현에 서툰 성폭력·학대피해 아동이나 장애인이 수사 과정에서 원활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 수사에 앞서 피해자 평가를 진행해 조사관이 수사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 진술조력인 제도는 성폭력특별법 개정에 따라 2013년부터 시행됐다.

진술조력인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등 내실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대한변호사협회와 국회여성가족위원회가 공동 포럼을 열고 진술조력인제도의 3년 성과를 평가했다. 참석자들은 진술조력인의 역할이 불분명하고 현장에서 덜 활용되고 있으며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진술조력인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2014년 기준 13세 미만의 성범죄 피해자는 1205명이었다. 이 중 386명만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진술조력인이 60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진술조력인 은 80여명이다. 상담소 등에 상주하는 인력은 10명뿐이다.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서울, 수도권 지역의 상근 진술조력인은 3명이다.

진술조력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현행법상 성범죄와 아동학대 범죄 피해자만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른 범죄 피해자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피의자, 참고인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적장애인이 살인 누명을 썼던 삼례 나라슈퍼 사건, 12세 아동이 살해 피의자로 몰렸던 칠곡 계모사건 등 억울하게 가해자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진술조력인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보좌한다. 독일은 모든 범죄 피해자가 진술조력인 제도를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진술조력인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동이나 장애인이 성범죄 및 학대범죄 피해를 당했을 경우 진술조력인, 진술분석가, 국선변호사가 수사 과정에 개입한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이 상당 부분 중복돼 있어 범죄 피해자가 같은 진술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진술조력인제도를 내실화하기 위해 법을 정비하고 예산을 늘리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배복주 소장은 “진술조력인 역할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하고 진술조력인 신청 의무화, 진술조력인 지원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