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탄핵소추 각하를 주장하던 박근혜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의 심리 개시 직후 일단 수세에 몰리는 모양새다. 탄핵소추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이해관계기관인 법무부에서 ‘적법하다’는 의견이 표명됐다. 박 대통령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던 ‘세월호 7시간’이나 측근비리에 대해서는 헌재가 “좀 더 구체적 근거들을 갖고 따져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에 소추위원 측은 “헌재의 의지를 확인했다”며 반기고 있다. 향후 공개변론에서 다뤄지게 된 불편한 의혹들에 대해 박 대통령 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박할 것인지 주목된다. 헌재는 예정보다 이른 25일 재판관 9인 전원의 방에 최신 도·감청 방지장치를 설치 완료했다.
“적법한 탄핵소추”
법무부는 지난 23일 “박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발의와 의결은 정당하다”는 취지의 40여쪽 분량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발의 및 의결 요건을 충족했고, 헌재에 적법한 소추의결서 정본이 제출된 만큼 적법성을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었다. 형식적 요건 충족을 판단한 법무부는 구체적 쟁점에 관한 학설과 결정례, 법무부 자체 의견을 헌재에 제시했다. 독일과 미국 등 일명 대륙법과 영미법 체계를 아우르는 해외 사례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법무부의 의견은 절차적 정당성부터 문제 삼아 탄핵소추 각하를 강조하던 박 대통령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지난 16일 “검사의 의견을 적은 것에 불과한 공소장, 무분별한 언론의 폭로성 의혹 제기 기사일 뿐 객관적 증거는 없다”며 탄핵소추 발의부터가 잘못이라고 지적했었다. 소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방어권 차원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도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무부는 이러한 주장이 옳다고 보지 않았다.
“4월 16일 행적, 온 국민 기억해”
헌재가 박 대통령 측에 직접 “문제의 ‘세월호 7시간’ 당시 행적을 시각별로 남김 없이 밝히라”고 석명(釋明)한 점은 국민적인 호응을 얻었다. 헌재는 “대부분의 국민은 자신의 행적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 “피청구인(박 대통령) 역시 그런 기억이 남다를 것”이라고 덧붙여 ‘기억이 안 난다’ 식의 회피를 미리 차단했다. 헌재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보고 수령 시각, 구체적 지시 내용을 제출 요구한 점은 그간 청와대가 강조해온 ‘이것이 팩트다’ 식 해명으로는 진상 규명이 안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초 박 대통령 측은 ‘세월호 7시간’ 의혹 역시 탄핵소추 사유로 부적합하다고 봤다. 탄핵소추안의 논리대로라면 향후 모든 인명피해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생명권 침해 결론을 초래하는 격이며,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던 점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헌재가 진상규명 의지를 공론화하면서 박 대통령 측은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현재까지 제시한 바 없는 구체적 행적을 내세워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수사기록, 유력한 증거”
준비절차기일 이전까지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던 최순실(60·구속 기소)씨 등의 검찰 수사기록 열람 문제에서도 박 대통령 측의 입맛에 맞는 결론이 나오진 못했다. 헌재는 지난 22일 박 대통령 측의 이의신청을 기각하며 검찰 측에 국정농단 관련 피고인들의 수사기록 송부를 강력히 촉구했다. 헌재는 “수사기록이 유일한 증거는 아니지만 탄핵심판에서 유력한 증거로 사용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 측도 마찬가지로 그런 자료가 없어서 제대로 준비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꼬집었다.
검찰은 헌재의 결정에 호응하며 “기록 송부 범위와 방법에 대해 헌재와 협의, 효율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애초 수사기록의 참고 자체를 반대하던 박 대통령 측 역시 자신들이 지정하는 부분을 인증등본 형식으로 보내 달라고 검찰·법원에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공동정범 피의자로 명시된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수사기록들을 헌재가 읽게 되면서 탄핵심판에는 속도가 붙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소장에 빈칸이 있다”고 주장해온 박 대통령 측은 향후 공개변론에서 대통령의 지시나 가담 등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음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법무부 “탄핵소추 의결 적법”… 수세 몰리는 朴
입력 2016-12-2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