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맹경환] 트럼프, 중국 길들일 수 있을까

입력 2016-12-25 18:37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이 복잡하다. 당초 중국을 잘 아는 힐러리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중국이 상대하기가 편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힐러리는 중국의 인권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고, 중국과 갈등을 초래한 ‘아시아 중시 정책’의 주창자였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동을 보면 심상치 않다. 트럼프는 이달 초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10여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중국’에 왜 얽매이느냐”며 중국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핵심 이익을 건드리고 나섰다.

트럼프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지 아니면 실수인지 헷갈렸지만 의도적이란 심증이 굳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제정치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도록 일부러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으로 행동해 상대에게 공포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 후반 마오쩌둥의 중국은 옛 소련과의 갈등이 깊어지자 전략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미국도 이런 중국의 손을 잡았다. 적(소련)의 적(중국)은 바로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후 미·중 관계를 지배하는 세 개의 양국 공동성명이 잇따라 나온다. 72년 상하이 공동성명과 79년 수교 공동성명, 82년 이른바 8·17 공동성명이다. 이를 관통하는 기본 전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은 바로 중국이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미국은 대만을 버리지 않았다. 중국과의 공동성명과 동시에 79년 대만관계법이 나오고 82년 ‘6개항 보증’이 발표됐다. 하나의 중국은 인정하지만 대만과의 교류는 지속하고 방어적 목적의 무기를 대만에 판매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대만의 이런 3자 관계는 긴장 속에 이어져 왔지만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널드 레이건의 미국은 대만에 전투기 엔진 부품 공급과 전투기 공동 생산 등 신무기 공급 정책을 폈고, 중국은 양국 관계를 재고하겠다며 반발했다. 빌 클린턴 정부가 95년 당시 리덩후이 대만 총통에게 모교인 코넬대 초청 방문을 승인하자 중국은 대만해협에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며 갈등이 고조된 적도 있었다.

긴장과 협력이 교차하는 속에서도 미·중 관계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지켰다. 클린턴 대통령은 대만을 모두 6차례 방문했지만 4번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이고 2번은 퇴임 후였다. 또 다른 것은 미국 대통령들은 거의 모두 집권 전이나 초기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지만 미·중 양국의 공조 중요성을 감안해 결국 꼬리를 내렸다는 점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98년 중국을 방문해 직접 중국과의 갈등을 풀었다. “대만을 지키겠다”며 호기로웠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2001년 중·미 군용기 충돌로 갈등이 격화됐지만 그해 9·11테러를 계기로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미·중 전략대화가 처음 시작된 것도 부시 정부 때였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트럼프가 과거 미국의 대통령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외교 조언자로 최근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에 지명된 피터 나바로 교수는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 이후 미국 외교에서 사라졌던 이 개념은 트럼프의 발언과 행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 이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며 굴기하고 있다. 트럼프가 힘으로 중국을 길들일 수 있을지 아니면 힘 대 힘으로 맞붙는 상황이 될지 전 세계는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