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복 많이 받으라는 말

입력 2016-12-25 18:56 수정 2016-12-25 19:18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답답한 청문회, 대규모 조류독감, 그리고 면역력 떨어진 이들은 에이형 독감에 걸리고. 어디를 둘러봐도 평화롭고 따뜻한 상황은 없고 속상한 뉴스만 들리는 성탄절이다. 행복한 사람들, 연초에 주고받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건넨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 그 덕담은 그냥 연말연시에 버릇처럼 주고받는 영혼 없는 말이었을까? 복 받으라는 덕담이 실현된 사람은 도대체 한 명도 없는 것일까?

수조원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차명계좌에 넣어놨다는 정황에 대한 뉴스를 듣는다. 그 재산은 한 개인이 혼자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었다. 많은 사람이 집에 있는 어린 자식들, 늙어가는 부모님, 혼자 헤쳐 나가야 할 불안한 미래를 위해 참을 수 없는 상황들을 견디며 경제활동을 하여 ‘국가’에 낸 세금인 것이다. 그래서 ‘피 같은 세금’이라 ‘혈세’라 한다. 그 혈세를 빨아 자신의 비밀주머니에 찼을 거라는 의혹을 받는 이들이 청문회에 나와 뻔뻔하게 일관하는 ‘모릅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나는 맨눈으로 흡혈귀를 바라보는 듯했다. 누가 저들을 영생불사의 흡혈귀로 만들었을까. 그들 자신일까, 그것을 모르고, 보고도 못 본 척했던 이들이었을까.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엄청난 돈을 벌면서 그들은 복 받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이들은 할 수 없는 짓들을 하며,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며 근면하게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하루치의 행복만으로도 기꺼운 사람들에게 그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이 박복한 시대에는 그런 이들이 아주 많다. 돈으로 못 할 것이 없는 시대에 복이란 무엇일까?

저들은 영생불사의 존재가 아니다. 꼬집으면 아프고, 바늘로 찌르면 피를 흘리는 인간들이다. 더 이상 인간성을 잃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7년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더 이상 돈 많이 벌라는 뜻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글=유형진 (시인),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