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공감이 필요한 세대

입력 2016-12-26 20:38

“선생님, 정말 슬퍼해야할 상황인 거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진심으로 슬프지가 않아요. 친구가 지금 당장 죽더라도 과연 진심으로 뭐가 느껴질지 모르겠어요. 제 마음이 고장난 걸까요.”

친한 친구가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이가 자신의 마음 상태를 이상하게 여기면서 했던 말이다. 머리로는 ‘슬퍼할 일’로 생각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정작 자기 마음에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서적 무감동, 공감능력 상실이란 문제가 생긴 경우였다. 그러나 이 아이는 적어도 불일치한 자신의 마음상태를 인식하기 때문에 공감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된다.

상담자로서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공감능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많이 느낀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 자기감정에 매몰돼 있을 뿐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식하는 능력, 타인이 겪는 마음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헤아리며 배려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상담현장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지만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어느 세대보다 궁핍하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선 무지한 세대가 요즘 아이들이다.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더욱 안타깝다. 미국의 정신분석가 크리스토퍼 볼라스는 정서적으로 무감동하고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증상을 ‘정상처럼 보이는 병(normatic illness)’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공감(empathy)이란 누군가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알고 타인의 감정 속에 들어가 함께 머물 수 있는 정서적 능력이다. 쉽게 말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롬12:15)’ 능력인 것이다. 이러한 공감능력은 누군가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받아본 경험을 통해서만 개발된다.

이런 면에서 요즘 아이들의 공감능력 부족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공감하며 키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의 대화가 아이의 정서보다는 “∼했니” “∼해라”와 같은 과제중심으로 흘러간다. 속마음까지 보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바쁜 부모에겐 그럴만한 시간적·정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자극을 받으면서 훨씬 더 많은 감정을 느끼지만, 이를 내놓고 이야기할 대상인 부모와는 이야기할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한마디로 ‘정서적 자수성가’를 이루어야 할 세대인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은 지식이나 실제적인 기능이 아니라, 속마음을 알아주고 정확하게 읽어주는 공감의 경험이다. 이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타인의 감정에 관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공감할 줄 아는 사람만이 속이 텅 빈 삶이 아닌, 나 자신과 타인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며 진정한 유대관계를 맺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속 고통을 듣고 반응하시는 ‘공감의 하나님’이시다(출 3:7). 우리 인간의 고통을 공감하신 주님께서 인간의 고통 속으로 온전히 들어오신 성탄절을 지내면서, 주님의 공감을 우리의 일상에서 삶으로 살았으면 한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 15세상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