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23일 즉각적인 개헌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야권에서 처음으로 ‘개헌 깃발’을 들면서 정치권 내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정치권이 개헌 격랑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개헌 세력은 크게 세 부류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및 손학규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 개헌파가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야권 잠룡들이 일부 가세해 세를 불렸다. 내년 1월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헌 관련 입장 표명도 파괴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헌 신중파로는 야권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 민주당을 비롯한 판단 유보세력은 ‘선(先) 논의 후(後) 추진’ 입장이다. 내용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개헌만 주장할 순 없다는 논리다.
국민의당은 비상대책위원회-국회의원 연석회의를 열고 개헌 즉각 추진,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조기 대선으로 즉각 추진이 어렵다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로 처리하는 방안을 차선으로 제안했다. 박지원 원내대표와 민주당 손 전 대표도 이날 회동하고 즉시 개헌 추진에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개헌 속도전을 촉구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곧 설치될 국회 개헌특위를 중심으로 조속히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여야 전직 의원 모임인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주권회의’(주권회의)가 개최한 개헌 공청회에서 “개헌 처리에 최우선 고려 대상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의 의지”라고 말했다. 주권회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상·하원 양원제 개편, 비례대표 확대 등을 담은 개헌안 초안도 공개했다.
조여 오는 개헌 논의에 민주당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지도부는 “개헌 시기와 내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난 다음에야 개헌 추진 여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도 민주당엔 복병이다. 정치권에선 현재 정치적 거물이나 압도적 1위가 없는 만큼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후진적인 ‘단일화’ 관행에 대한 비판도 크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언론 오찬에서 “국민 20%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금방 레임덕에 빠진다”고 말했다. 박 시장도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당연히 결선투표제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도 가세했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군소정당 후보도 단일화 압박 없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어서다.
개헌 및 결선투표제 논의는 문 전 대표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비박(비박근혜)’, ‘비문(비문재인)’, 국민의당, 원내외 개헌세력이 합해지면 대규모 정계개편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접고 국가 시스템을 개조하자는 데 발을 뺄 명분도 많지 않다.
문 전 대표 측은 국민일보에 개헌엔 ‘찬성’, 시기는 ‘차기 대선 후’, 방식은 ‘대선주자 공약으로 차기 정부에서 시행’ 구상을 밝혔다. 대통령 임기 단축에 대해선 반대했다. 야권 대선주자 중 ‘차기 대선 후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은 문 전 대표 외에 이 시장과 박 시장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임기 단축에 모두 찬성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만 개헌 시기·임기단축 여부에 ‘유보’ 의견을 냈다. 안 지사는 “현재의 개헌 논의는 대선에 유리하도록 일시적으로 판을 짜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비주류가 개헌 세력에 합류할 경우 민주당은 안팎에서 거센 압박에 직면할 전망이다.
강준구 정건희 고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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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개헌 논의 급물살… 적극·신중·유보 ‘3파전’
입력 2016-12-24 00:06 수정 2016-12-24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