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에 찾아온 성탄

입력 2016-12-24 00:07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 부모와 이별한 신생아들을 돌보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생후 사흘 된 민호(가명)가 한 자원봉사자의 손길을 느끼며 잠들고 있다. 윤성호 기자

성탄절을 앞둔 23일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잔잔한 캐럴 소리가 들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투 유’를 들려주는 작은 스피커 옆에는 금빛 별과 푸른 공, 반짝이는 전구에 휘감긴 크리스마스트리가 빛을 내고 있었다. 성탄 전야를 기다리는 들뜬 분위기는 여느 곳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아기 6명은 성탄절을 알 리 없다. 태어난 지 1주일도 안 된 신생아부터 20개월이 된 아이까지 이곳 ‘아가방’에서 평소처럼 함께 자고 먹고 울고 웃는다.

8월부터 이곳에서 지낸 준영(가명·생후 7개월)이는 호기심이 많아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 만지고 맛보려 한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안 된 민철(가명), 정민(가명)이와 유일한 여자아이 소영(생후 50일)이, 몸이 불편한 경호(생후 20개월)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 6명은 아이 부모가 양육 준비를 끝낼 때까지 이곳에서 지낸다. 조태승 베이비박스 담당목사는 “이 아이들은 도와주는 손길 없이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가장 작은 존재”라고 소개했다.

베이비박스는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박스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됐거나 당장 아이를 기를 준비가 안 된 부모의 아이를 맡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사랑공동체교회가 2009년 12월 첫 베이비박스를 열었다.

성탄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찾았다. 작고 천진한 아이들을 한 명씩 감싸 안았다. 자칫 슬프고 가여울 수 있는 이 공간에 봉사자들은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박스에 온 민호(가명·생후 3일)는 배꼽에 탯줄을 붙인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유난히 배냇저고리가 헐렁해 보였다. 민호는 다른 아이보다 작게(2.5㎏) 태어났다. 자원봉사자가 기저귀를 갈아도 울지 않고 눈만 끔뻑였다. 속싸개로 감싸고 침대에 눕히자 연신 하품하더니 이내 잠들었다.

자원봉사자 송신애(36·여)씨는 능숙하게 민호 기저귀를 갈았다. 온 힘을 다해 울던 아이들도 송씨 품에 안기면 금세 미소를 찾았다. 2014년부터 아이들을 돌봐온 송씨는 세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그는 “실같이 마른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란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며 “의사표현도 못하는 연약한 아이가 어른들 선택으로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면서 얼마나 많이 울고 보챌까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강수현(24·여)씨는 소영이에게 분유를 먹였다. 꼴깍대며 분유를 삼키는 소영이를 보면 저절로 따라 웃게 된다. 아기를 좋아해 2개월 전 처음 이곳을 찾은 강씨는 “한 가정에서 부둥켜안고만 있어도 부족할 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성탄절은 특별한 의미다. 송씨는 “성탄절은 생명을 살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갈 길 잃은 아이들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탠 것 같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 직장 동료 11명과 함께 봉사를 온 노우진(31)씨는 “가정이 있는 아이들은 선물을 받으려고 양말을 걸고 있을 텐데 여기 아이들은 그럴 수 없어서, 산타는 돼줄 수 없더라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여기선 성탄절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12월에 이곳으로 오는 아이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베이비박스는 사람들이 한 해를 정리하며 들뜬 마음으로 축제를 열고 있을 때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이별하게 되는 역설적인 공간”이라며 “자원봉사자들의 온기 덕분에 지금껏 아이들을 돌봐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