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린 '마리 프로젝트' 미술계 비판 무성… 앤디 워홀·피카소 전시가 웬말?

입력 2016-12-26 00:01
지난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전시 계획에 대해 소개하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그는 지난 1년 동안의 전시는 전임 관장 시절에 정해졌던 만큼, 내년 전시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마리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겠다고 밝혔다.

‘이러려고 외국인 수장을 뽑았나?’

취임 1년을 맞은 스페인 출신 바르토메우 마리(50) 관장이 진두지휘한 내년 전시 계획이 공개된 뒤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미술계의 히딩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사상 첫 외국인 수장으로 취임했지만, 뚜껑이 열린 전시 보따리에선 전시 철학이 보이지 않는데다 앤디 워홀, 파블로 피카소 등 서양 거장의 블록버스터 전시가 튀어나와서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김홍희(68) 관장 취임 이래 블록버스터 전시를 지양하겠다고 했지만 방학 특수를 노리고 서양 명화 전시가 부활했다. 동시대 현대미술의 보루가 돼야 할 국공립미술관이 수치적 성과내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미술계에 따르면 최근 페이스북 상에선 ‘예술의전당에서 20년 전 대관전시 했던 것을 재탕! 그것도 국현(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피카소만 보여주면 껌뻑 죽는 줄 아나보다’ 등 글이 오르는 등 국립현대미술관 내년 전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5일 마리 관장이 “세계무대를 중점에 둔 마리 프로젝트가 본격 시동을 걸었다”며 앤디 워홀, 리처드 해밀턴, 파블로 피카소 등 서양의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전시하는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앤디 워홀-그림자들’전은 뉴욕 파리 상하이 등을 도는 순회전을 유치한 것이고, 영국의 팝아트 작가 리처드 해밀턴 전시 역시 자체 기획전이 아니라 한영상호교류의해를 맞아 외부 기획으로 열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카소 전은 내후년 전시를 미리 발표한 것이다.

미술평론가 A씨는 “앤디워홀전은 지난 10년 사이 서울시립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도 전시를 한 것”이라며 “묵은 스타 전시를 재탕하는데 실망감을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공공미술관 간부 B씨는 “서구 거장 전시라도 우리가 기획해서 지금, 여기 한국에서 왜 그런 전시를 하는지 보여준다면 문제될 게 없다”면서 “그런데 외부 기획이면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전시기획자 C씨는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 관장에게 뭘 바라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어 소통보다는 철학의 부재가 본질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전시 철학을 묻는 질문에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식의 동문서답을 했다.

과거 광주비엔날레 감독을 맡았던 아프리카 출신 오쿠이 엔위저 감독은 한국어를 몰라도 ‘미술은 현실을 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후 총감독을 맡은 2015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 자신이 발굴한 한국 젊은 작가를 초청했고, 그때 임흥순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았다. 전시기획자 D씨는 “‘이집트 초현실주의자전’ ‘일제 강점기 신여성’전 등 눈에 띄는 전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건건의 전시를 묶어주는 키워드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작가 E씨는 “메시지가 없어 젊은 작가들이 뭘 보고 작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립미술관도 방학이면 나오는 블록버스터의 전형인 인상파의 거장 ‘르누아르의 여인’ 전을 열고 있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김홍희 관장은 2012년 취임 후 블록버스터 전시를 지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해 여름 그룹 빅뱅 멤버 지드래곤을 내세운 전시를 열어 전시가 상업화됐다는 비난을 샀다. 서양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우리 자체적으로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해명한바 있는데, 이번 르누아르전은 묵은 레퍼토리라는 점에서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