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푸틴 “핵능력 강화”… 美·러 핵경쟁 부활하나

입력 2016-12-23 18:05 수정 2016-12-24 00: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2일(현지시간) “미국은 핵 능력을 대폭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할 만큼 러시아의 핵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겠다”고 말한 직후다. 핵무기 양대 강국이 핵무기 경쟁을 벌이던 냉전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가 핵무기에 관한 분별력을 가질 때까지 미국은 핵 능력을 대폭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 능력 강화와 확장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핵무기 수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기존 핵무기 성능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푸틴의 ‘핵 능력 향상’ 발언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백악관 대변인으로 내정된 숀 스파이서도 “트위터 내용은 러시아와 중국 등 다른 나라들에 경고를 보낸 것”이라며 “우리가 핵무기를 늘리겠다는 게 아니라 외국이 그럴 경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푸틴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에서 가진 연설에서 “전략 핵무기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현존하거나 앞으로 개발될 미사일 방어방을 뚫을 정도로 미사일 성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23일 연례 기자회견에서도 “핵무기 능력 제고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며 “군비 경쟁에 앞장서는 건 우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냉전 종식 뒤 핵탄두 개발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1989년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 이후 공화-민주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이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9년 ‘핵무기 없는 세상’을 구호로 내걸었다.

이후 미·러는 2010년 핵무기 감축을 골자로 한 ‘뉴 스타트’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르면 양국은 2018년 2월까지 핵탄두를 700기로, 실전배치 핵미사일을 1550기 이하로 줄여야 한다. 미국과학자연맹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실전배치 핵미사일 1930기를 포함해 약 7000기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실전배치 1790기를 합해 7300기를 갖고 있다.

트럼프의 ‘핵 능력 확장’ 발언은 뉴 스타트 협정을 폐기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돼 논란을 빚었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핵무기 감축 노력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며 이미 미국과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핵무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핵무기 수를 늘리지 않고도 기존 핵무기를 교체하거나 소형화하는 방식으로 성능을 향상시키고 핵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뉴 스타트 협정 위반이 아니다.

미 국방부도 수명이 다된 기존 핵무기 교체를 위해 2021년부터 15년간 매년 180억 달러(약 21조6558억원)를 투입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미케일라 다지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2010년 백악관이 펴낸 ‘핵전략 검토’는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없다는 잘못된 전제 하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이미 대규모 핵무기 현대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군축협정을 위반했고, 중국도 핵무기 개발 경쟁에 뛰어든 만큼 미국도 기존 협정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