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살처분의 끔찍한 추억… 문제는 진행형

입력 2016-12-23 18:07 수정 2016-12-23 20:30

2014년 3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살처분 침출수 문제를 취재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 가보니 마을을 관통하는 개울물은 온통 핏빛이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제보자와 함께 개울가를 따라 올라가보니 AI 살처분 매몰지와 연결돼 있었다. 50여평 크기의 매몰지에는 닭 39만 마리가 묻혀 있었다. 마을 삼거리에서 비교해보니 매몰지에서 내려오는 개울물과 매몰지와 무관한 곳에서 흐르는 물은 색깔과 냄새가 180도 달랐다.

제보자가 살처분 당시 몰래 찍은 동영상을 보니 비좁은 매몰지에 겹겹이 닭 사체가 쌓여 있었고, 그중 몇 마리가 살아 움직이자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막대기로 쳐서 재차 닭을 죽이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고 몇 개월 동안 닭과 계란을 먹지 못했다.

기사가 나가자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등 정부 합동조사단은 침출수 원인 조사와 수질 검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많은 양의 침출수가 대전·세종 주민의 식수인 금강으로 흘러간 뒤였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났지만 살처분 과정의 문제점은 여전한 듯싶다. 23일 현재 가금류 2400만 마리가 살처분됐는데 대다수가 생매장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조류독감살처분공동대책원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생매장식 살처분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급박하다는 게 이유인데, 한 지자체 방역담당 관계자도 “CO2가스 등을 이용해 안락사시킬 여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살처분 방식은 동물들에게도 고통이지만 생매장으로 인한 가금류 혈액 및 타액 유출로 인체 감염까지 우려된다. 사상 최악의 AI 사태의 주원인은 철새가 아닌 정부의 초기 방역 실패다. 정부가 살처분이라도 제대로 해 이중·삼중의 피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