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A고등학교 학생들의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 ‘A고등학교 대나무 숲’에는 학교를 비판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한 학생은 지난 8월 “몇몇 선생님이 우리학교 축제를 학술활동처럼 만들고 있다”며 “이럴 거면 축제를 왜 하느냐”는 글을 올렸다. 다른 학생들은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했다.
대구의 ‘B고등학교 대나무 숲’도 비슷하다. 한 학생은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촛불을 종북 세력으로 보는 시선을 거두라”고 교사들을 익명으로 비판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 2학년 구모(18)군은 “직접 나서긴 조심스러운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처럼 익명 SNS를 소통 창구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8일 발표한 ‘학교생활에서의 학생권리 보장 및 학생인권 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고교생 10명 가운데 3명은 교사의 체벌과 언어폭력을 겪었다. 교사에게 직접 체벌을 받거나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중학생 29.5%, 고등학생은 27.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교사의 언어폭력을 들은 경험이 있는 중·고교생은 각각 30.2%, 37.8%에 달했다.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학급·학생회 임원 출마나 활동에 제한을 받거나 이를 목격한 중·고교생은 각각 19.5%, 26.8%였다. 중학생 6.2%, 고등학생 9.5%는 교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거나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체벌이나 성적 차별은 영화나 드라마에도 흔히 등장할 정도로 학교 현장에 만연해 있지만 21세기의 청소년들은 더 이상 묵묵히 견디기만 하지 않는다. SNS와 광장이 청소년들에게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
지난 6일 익명으로 개설된 S여중고 관련 트위터 계정에는 교사들의 언행에 성적 수치심을 느낀 재학생 및 졸업생의 폭로 글이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교육청이 나서서 조사했고, 지난 13일 성추행에 연루된 교사 8명을 수사 의뢰했다. 교육청은 21일엔 다른 학교의 피해 사례는 없는지 긴급 실태조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힘든 성추행 문제였지만 익명의 SNS 계정이었기에 폭로가 가능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윤모(17)양은 “아직도 일부 교사는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며 “SNS에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어 훨씬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기도 한다. 지난 8차례 촛불집회에 청소년이 대규모로 참여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LED 촛불과 깃발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민주주의를 외쳤다. 학교와 이름을 밝히고 발언대에 나서는 청소년도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할 말 다 하는 세대’인 중·고교생들이 학교에서 느낀 답답함을 SNS와 광장에서 해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쉽게 순응하던 예전과 달리 현재 중·고교생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소리를 낸다”며 “잘못된 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SNS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진단하기도 한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섞인 SNS에서 중·고교생들이 소통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도 “언제 어디서나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SNS가 소통 창구 역할을 해 학생들을 광장으로까지 끌어냈다”고 해석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기획] 학생들, SNS·광장서 자기 목소리 낸다
입력 2016-12-2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