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본격 착수한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 사유를 5가지 유형으로 대별, 효율적인 변론을 진행하겠다고 22일 밝혔다. 신속한 결론을 촉구하는 국민적 여론을 받아들여 국정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헌재는 증거조사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헌재는 박 대통령 측이 제출한 답변서를 두고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박 대통령 측이 여론조사와 촛불집회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헌재가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응답할 것을 석명(釋明)하자 소추위원 측과 박 대통령 측의 표정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헌재는 애초 5가지 헌법 위반, 4가지 법률 위반으로 지적됐던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를 5가지의 굵직한 주제로 단순화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양측에 제안, 동의를 얻었다. 헌재가 스스로 정리해 당사자들에게 제안한 5가지 유형은 비선조직에 따른 인치주의,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각종 형법 위반 등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소추 사유를 하나하나 따지지 않고 굵직한 유형별로 판단했던 선례를 따른 것이다.
헌재의 조치는 결국 신속한 재판의 목적으로 풀이된다. 주심 강일원(57·사법연수원 14기) 재판관은 “헌재가 직권으로 증거조사도 하고 있고 신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걸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이 “위조를 의심하지 않는다”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조사록 등의 증거 채택에 즉시 동의하자 이진성(60·10기) 재판관이 “그러한 자세가 원활한 재판 진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런 헌재는 검찰 측의 수사기록을 참고할 예정임을 재차 강조했다. 증거조사 분야의 준비절차를 담당한 이진성 재판관은 “최순실 사건 변호인들이 이미 수사기록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있다”며 “이미 시중에 나온 상황이라면, 검찰에 대해 헌재가 정중하고도 강력하게 수사기록을 인증등본 형식으로 재판부에 보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강 재판관은 “송부가 안 되면 주심인 제가 문서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증조사를 시행하겠다”고도 말했다.
준비절차기일에서 첫 대면한 양측은 별다른 공방을 벌이지 않았지만, 헌재가 대통령 측 대리인단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이어가 눈길을 끌었다. 강 재판관은 박 대통령 측을 향해 “(답변서가) 일종의 가정적 주장으로 보이는데, 기소된 부분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것인지 취지가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이 최순실의 책임을 피청구인(박 대통령)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범죄행위가 입증돼도 피청구인 책임으로 연관할 수 없다고 답변한 내용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리인단은 “차후 확인해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강 재판관은 “피청구인이 10월 25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될 때까지 도움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발언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도움을 받았고 무엇을 받았는지 분명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탄핵소추 사유를 부인하지만 말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로 반박을 하라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제2차 준비절차기일은 27일 오후 2시 열린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답변서 구체적 설명 부족”… 朴측 꼬집은 헌재
입력 2016-12-23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