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강한 어조로 경기침체 대응을 위한 정부의 재정집행 확대를 강조했다. 통화 당국의 수장이 재정 당국에 공을 넘기며 적극적 훈수를 둔 것이다.
한은은 또 내년도 우리 경제 성장률이 2.8% 전망치보다 낮아질 것이란 점을 공식화했다. 이어 대출금리가 1%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연 9조원에 이르는 등 가계부채가 소비여력을 줄이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이 총재는 21일 밤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에 대해 “완화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평소 발언에 매우 신중한 이 총재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기획재정부가 건국 이래 최초로 내년도 예산을 400조원 넘긴 ‘슈퍼 예산’으로 작성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총지출 규모보다 고작 2조원이 증가해 0.5% 지출 증가율을 보였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경기침체를 되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 총재는 “국제금융기구와 해외 신용평가사는 한국에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저는 그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경기 하락을 막는 데 금리 정책만 가지고선 역부족이란 점도 시인했다. 이 총재는 “게임은 통화정책이 아니라 재정정책으로 옮겨간다”고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해 한국경제 상황에 대한 현안보고를 이어갔다. 한은이 점검한 우리 경제는 비관 일색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에 따른 글로벌 경제의 높은 불확실성, 내년도 2.8% 전망치를 달성하기 어렵게 된 우리 경제 성장경로의 하방 리스크 증대, 외국인 채권 투자자금 유출 지속 등 금융·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증가세 지속 등 4대 불안 요인이 등장했다.
한은은 특히 대출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가계 전체의 추가 이자상환부담 규모는 연간 9조원 내외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어 11월 중 은행 가계대출금리가 3.08%에서 3.21%로 0.13% 포인트 올라 시중금리 인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신용·저소득·다중채무자 등 취약가계의 부담이 증가되고 대출 부실화 가능성도 나오고 있어 점검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한은은 앞으로 대응방향과 관련해서도 “통화정책 운용 시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금융안정 리스크 증대 가능성에 더욱 유의하겠다”고 밝혔다. 금리를 더 내리기 힘들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가계부채가 소비제약을 통해 경기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도 명기했다. 한은이 계산한 올해 3분기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51.1%로 2013년 133.9%보다 대폭 악화됐다. 국민이 쓸 수 있는 돈은 857조원인데 빚이 1295조원으로 1.5배 더 많아 돈을 맘 편히 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내년 재정 더 많은 역할해야” 이주열, 경기침체 대응 强훈수
입력 2016-12-23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