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책임 회피’ 여전… 박현주, 이사 등재 전무

입력 2016-12-22 18:29 수정 2016-12-22 21:40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이 올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경영관행 부문에서 평가대상 61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책임은 지지 않고 잇속만 챙기는 총수일가의 행태,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제와 같은 후진적 지배구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정경유착을 끊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벌 자체도 개혁의 대상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공개한 ‘2016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을 보면 총수와 재벌 2, 3세가 포함된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 비율은 감소 추세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 계열사 918개 중 총수일가가 1명이라도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17.8%로 지난해(18.4%)보다 줄었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도 5.2%에 불과했다.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며 배당 등을 통해 수익을 챙기면서도 등기임원을 맡지 않으면 경영 부실 등에 대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권한은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특히 2013년 8월부터 등기임원 보수 공개가 의무화되면서 등기임원을 내려놓는 총수일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24개 계열사를 거느린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계열사 어느 곳에도 이사로 등재되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녀 가운데 등기이사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다. 이번 자료는 지난 4월 1일 기준으로 지난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등재된 이재용 부회장은 제외됐다. 신세계 역시 등기이사로 활동하는 총수일가는 단 1명뿐이었다.

총수일가의 부당한 경영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1년간 대기업 계열사의 이사회 안건 3997건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부결되거나 수정된 안건은 단 16건(0.40%)에 그쳤다. 그마저도 11건은 총수가 없는 대기업인 포스코에서 일어났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에서 사외이사가 안건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단 5건뿐이었다. 이사회 안건 중 90%가량이 총수가 있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총수 있는 대기업의 사외이사 역할은 사실상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공정위 김정기 기업집단과장은 “총수일가는 책임경영 측면에서 미흡한 양상을 보이고 있고, 사외이사의 권한 행사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재벌개혁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총수일가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일가 지분 30% 이상에서 20% 이상(상장기업 기준)으로 확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포함해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총수일가 권한 견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0여건 발의된 상태다. 최순실 사태와 여소야대 국면, 조기 대선 가능성 등이 겹치면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가 또다시 우리 사회에 이슈로 등장할 전망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