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남중] 서울시장 박원순의 1884일

입력 2016-12-22 17:29

박원순 시장이 22일 민선 서울시장으로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웠다. 이날까지 박 시장 재임 기간은 1884일로 이전 민선 서울시장 최장수 기록이었던 오세훈 전 시장의 1883일을 넘어섰다. 2018년 6월까지 남은 임기를 다 채울 경우 고건 전 총리가 갖고 있는 민선·관선 통합 최장수 서울시장 기록(2213일)도 경신하게 된다. 만약 박 시장이 3선에 도전해 성공한다면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 될 수도 있다.

현재로선 박 시장이 잔여 임기를 다 채울지 불투명하다. 본인조차도 결정을 못 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대선 도전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지지율이다. 3∼4%대로 대선 후보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박 시장이 대권 도전 대신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여론은 박 시장이 대선 후보로 나설 자격이 있다는 건 대체로 인정하는 듯하지만 왜 박원순이 대통령이 돼야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분위기다. 박 시장은 철학과 정책, 경력, 평가 등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나 이재명 성남시장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차별성과 강점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 박원순이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는 서울시장으로서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평가가 깔려 있기도 하다. 확실히 박 시장에겐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 같은 굵직한 뭔가가 없다. 그게 약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규모 개발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역대 어느 서울시장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닐까. 박 시장을 확장과 이윤의 욕망이 들끓는 서울에서 개발주의를 몰아낸 최초의 시장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박 시장 재임 기간 서울시에서는 ‘개발’이나 ‘철거’ ‘신도시’ ‘뉴타운’ 같은 단어가 거의 사라졌다. 오랜 세월 서울시 행정의 키워드 노릇을 해오던 단어들이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재생’ ‘마을’ ‘골목’ ‘시장’ ‘공원’ 같은 말들이 들어섰다. “합의 없는 강제철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박 시장의 이 말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서울시에서 강제철거는 사실상 금기어가 됐다.

박 시장이 청년이나 복지, 사회적경제, 시민단체 등 주변부에만 집착했고 끝내 그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거나 “포퓰리즘” “예산낭비”라는 공격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 외면당해 왔던 비주류 측 주체나 주제들을 시정의 핵심으로 끌어안은 첫 서울시장이라는 게 명예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다들 청년과 복지를 강조했지만 박 시장보다 더 집요하게 이 주제에 매달려온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협치나 대안경제를 그만큼 과감하게 밀어붙인 사례는 앞으로도 한동안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정책에는 실패해도 협치에 실패하는 것은 용서하지 못한다”는 박 시장의 말은 서울시 행정 언어를 바꿔 놓았다. ‘발전’ ‘성장’ ‘효율’ ‘비용 절감’ 등을 대신해 ‘협치’ ‘경청’ ‘소통’ ‘공개’ 등이 서울시 공무원들의 일상어로 자리잡았다. 박원순의 1884일은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한 시간이었다. 그 기간 서울시는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반값등록금, 청년수당, 근로자이사 등 박원순의 서울시는 국내 초유의 실험들을 해 왔다. 이 실험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박 시장이 평가대에 올랐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