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기록 경신의 나날들

입력 2016-12-22 17:30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뉴욕대 정신과 교수이며 40년간 폭력을 연구한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이 쓴 책이다. 그는 1900년부터 2007년까지 한 세기에 걸쳐서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의 변화를 분석한다. 그 결과 보수정당이 집권할 때 자살이나 살인 같은 폭력적 죽음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용 유연화나 부자 감세처럼 부유층의 이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정당이 집권할 때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실업률이 높아진다. 길리건은 이런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빈곤층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며, 이것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폭력, 즉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해치는 행위로 나타난다고 해석한다. 그는 정치가 삶과 죽음을 가르기도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길리건의 연구는 미국사회의 통계자료들로 이루어진 것이라 그 결과를 우리 사회에 직접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부유층이 아니라 서민층을 위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정당이 집권한 적은 없으니, 정권의 지향성에 따라 폭력적 죽음의 실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11년째 1위다. 매일 약 40명이 스스로 생명을 끊는다. 국민의 수치심이나 모욕감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자기 파괴의 성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더라도 수치심과 모욕감은 날마다 기록을 경신한다. “최순실을 아직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오가는 청문회를 보고 있을 때, 키친에 캐비닛이 있다는 것인지 캐비닛에 치킨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생떼를 들을 때,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몇 백 억이다 몇 천 억이다 소문이 무성한 재산을 놓고 서로 밀어내는 꼴을 볼 때. 누가 누구보다 더 해로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뻔뻔함도 날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