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악의 극한서 만난 선, 진실일까

입력 2016-12-22 17:37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의 끝은 어디일까. 악의 실체를 탐구한다는 어떤 소설가도 주원규(41·사진) 작가 앞에서는 빛을 잃을 듯하다. 장편 ‘반인간 선언’에서 거대기업과 종교집단의 횡포와 부패를 고발해온 작가는 신작 ‘크리스마스 캐럴’(네오픽션)에서는 소년원을 무대로 ‘악을 악으로 밖에 응징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폭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크리스마스 아침, 임대아파트 옥상 물탱크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사망자는 지적 장애인 주월우. 미심쩍은 정황에도 사건은 서둘러 종결되고, 그의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난다. 주일우는 부모가 가출한 후 쌍둥이 동생 월우와 치매 초기인 할머니를 챙겨야 하는 소년 가장이었다. 고등학교 중퇴 후 생계를 위해 철거민 농성 진압 용역업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세상에 홀로 남게 된 그는 법이 외면한 동생의 사망을 둘러싼 진실을 스스로 밝혀내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동생이 미처 끄지 못한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 크리스마스 이브, 동생이 일하던 편의점에서 난동이 있었던 것이다. 낯익은 불량배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이 사건을 일으켜 소년원에 들어가자 주일우는 자신도 소년원에 들어가게끔 일을 꾸민다.

소년원은 교화를 목적으로 한다지만, 실은 출구 없는 나락의 공간이다. 원생과 원생끼리, 교사와 원생 사이에 끊을 수 없는 폭력과 악의 먹이사슬이 있다. 소년원 교사 한희상은 악의 덩어리 그 자체다. 원생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그는 자신의 구두코를 핥게 하며 멍멍 짖게 하는 등 비열한 폭력으로 질서를 유지한다. 성폭력까지 존재하지만 먹이사슬의 맨 끝에 있는 약자는 이렇게 절규할 뿐이다. “누구도 지켜주지 않았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의 노예가 되었을 때만 가능했다.”(183쪽)

소년원의 유일한 의인은 교정교사 조순우이지만 그는 무력하기만 하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악의 괴물이기를 자처했던 주일우. 그의 신념이 근저에서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 바로 ‘인간쓰레기’ 고방천이 들어오면서부터다. 한희상도 그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고방천의 폭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주일우는 절규한다. “난 괴물이 될 수 없다”라고.

이런 상황에서 의외의 반전이 일어나며 인간의 선함 또한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묻게 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처절한 복수극인데 동시에 가슴에서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는 아픈 소설이다. 작가는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