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위→ 13위…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입력 2016-12-22 00:00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한 통신사의 멤버십 사이트에는 회원들에게 도서를 공짜로 보내준다는 이벤트 공지가 떠 있었다. 출간 직후여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자기계발서 ‘부러지지 않는 마음’이란 책이었다. 주소 이름 휴대전화번호 등을 입력하고 응모한 회원 중 5110명이 이벤트에 당첨됐다. 이들에겐 며칠 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이 배달됐다. 겉으로 보기엔 기존 도서 증정 이벤트와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이 이벤트는 출판사와 마케팅업체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하려고 도서 사재기를 하면서 이를 숨기기 위해 펼친 연막작전이었다. 이벤트에 앞서 ‘부러지지 않는 마음’의 출판사인 A사의 대표 이모(64)씨는 마케팅업체 B사의 대표 최모(38)씨에게 도서 사재기를 해 달라고 의뢰했다. 최 대표는 통신사 멤버십 사이트에서 무료 도서 증정 이벤트를 진행한 뒤 당첨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입수했다. 최씨는 대형 인터넷서점에 당첨자들의 개인정보를 넣고 비회원 주문 방식으로 ‘부러지지 않는 마음’ 5110권을 주문했다.

효과는 좋았다. 이 책은 지난해 출간 직후인 12월 셋째주에 YES24 자기계발 분야 판매 순위에서 248위에 머물렀지만 사재기가 시작된 다음주인 넷째주에는 13위를 기록했고 2월엔 최고 3위까지 올라갔다. 사재기가 끝난 3월엔 다시 순위가 급락, 넷째주에 138위까지 떨어졌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대형서점 신간도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한 혐의(출판문화진흥산업법위반)로 출판사 대표 이씨 등 출판사 관계자 4명과 마케팅업자 최씨 등 2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들은 2014년 9월부터 2년여간 ‘졸업하고 뭐하지’ ‘아버지는 말하셨지’ 등 11종의 도서를 약 1만2000권 사재기해 판매 순위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10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사재기로 의심되는 도서가 있다는 첩보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그동안 도서 사재기는 출판사 직원들이 서점을 돌며 도서를 다량 구매하거나 가족이나 지인 아이디로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번에 적발된 사건은 도서 증정 이벤트를 빙자, 온라인으로 일반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사재기를 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정상적으로 주문이 이뤄졌고, 이벤트 당첨자들도 정상적으로 무료 도서를 받았기 때문에 사재기인지 정상적인 구매인지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이런 방식의 책 사재기는 남는 장사였다. 출판사는 마케팅업체에 도서구매대금과 권당 1500∼2000원의 수수료를 내고 사재기를 의뢰했는데, 마케팅업체가 인터넷 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하면 책 가격의 50∼60%는 인세 등의 명목으로 다시 출판사로 돌아온다. 경찰 관계자는 “도서 사재기가 신문광고 등 정상적인 홍보활동 비용보다 적고 판매 순위 상승에도 직접적으로 반영돼 일부 출판사들이 불법 도서 사재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글=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공희정 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