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창간 28주년을 맞아 가나아트와 공동기획한 권순철 작가의 ‘영혼의 빛-예수’전이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되고 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흥얼거리며 들뜬 마음으로 전지전능한 예수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대신 우리와 함께 고통 받으며 울고 있는 인자(人子)는 만날 수 있다.
‘예수’ 전시장에 들어서면, 3m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500호)이 시선을 휘어잡는다. 이 커다란 캔버스에는 가시관을 쓰고 있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가시에 찔려 흘러내린 피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엉겨있기도, 얼굴 여기저기에 땀과 먼지와 함께 응고되어 있기도 하다. 움푹 파인 눈은 세상과 이별하려는 듯 감겨 있고, 입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위해 벌려져 있다. 물감의 두께만큼이나 두꺼운 고통의 지층이 느껴진다.
30대 초반인 예수의 얼굴은 삶의 무게 때문인지 노인처럼 보인다. 배경의 상서로운 검푸른 색 때문일까? 예수의 눈가가 유독 푸르스름하다고 느끼며, 적당한 관람거리를 가지려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는데 순간 ‘예수’의 왼쪽 눈 아래 무언가 반짝인다. 눈물방울이다! 예수의 왼쪽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또 다른 눈물방울이 곧 떨어져 내릴 것 같다. 여러 번 그것도 한참 동안이나 이 작품을 보았는데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보이며 심장을 후벼 파듯 내리꽂힌다. 그런데 한번 그 눈물을 보고나니, 이 작은 눈물방울이 체한 것 마냥 마음에 걸려 있다.
눈물을 흘리는 ‘예수’의 맞은 편 벽에는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처럼 앙상한 인물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고 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부유하듯 ‘노랗게’ 드러나는 몸으로 부르짖고 있다. 여백처럼 비어 있는 그의 하얀 가슴팍이 너무나 공허해서 예수는 울고 있다. 밤바다 같은 어둠 속에서는 전남 진도 팽목항의 물결 소리가 들려오고, 광화문의 촛불이 넘실거리며,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앙상한 팔다리가, 시리아 알레포 어린이 옴란 다크니시의 피와 눈물이, 비만의 시대에 기아로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앙상한 가슴팍이 오버랩된다.
이번 전시는 아기 예수가 세상에 온 진짜 이유와 500주년 종교개혁의 전야에 종교인들이 고민할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가 아직도 울고 있다. 전시장을 떠난 지 오래 되었는데도, 그의 눈물에 체하여 그 응어리가 내려가지 않고 마음을 콕콕 찌른다.
‘십자가’ 연작도 네 점 출품됐다. 어찌 보면 인자(人子)의 모습 같기도, 사람의 넋이 풍파에 휘적휘적 흔들리는 모습 같기도 하다. ‘십자가’도 ‘예수’처럼 물감이 캔버스 위로 켜켜이 쌓아 올려졌다. 이 두꺼운 물감 안에 급히 지나치면 못 볼 수 있는 이물질이 박혀 있다. 바로 ‘가시관’의 또 다른 버전인 ‘가시철조망’이 십자가의 심장에 파묻혀 있다. 차라리 가시관은 벗겨 낼 수 있겠지만, 철조망은 살 속에 묻혀 버려서 꺼낼 수조차 없다. 살 속에 묻어두고 영원히 아파해야 할 슬픔이다. 그의 ‘눈물’도 심장에 박힌 ‘가시’도, 급히 지나치면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는 우리 이웃들의 아픔이다.
유화 작품은 여러 겹의 감성이 축적되고 승화되어서 수많은 다양한 느낌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데생은 작가가 언제 어디서 어떤 감성으로 그렸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몇몇 작품의 하단에는 ‘철’이라는 작가의 사인이 있고, 12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호텔 방에서 그렸다고 적혀 있다. 작품 속의 인물은 여전히 가시관을 쓴 예수인데도 소년 예수처럼 그렇게 싱그럽고 활기가 넘친다. 작가는 당시 LA에서 전시가 있었는데, 그때 행복했던 것임이 틀림없다. 반면에 11월 16일 새벽 3시30분 서울에서 그려진 예수상은 스위스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 섬’처럼 그렇게나 무겁고 적막하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걸까? 이른 새벽에 홀로 깨어나 밤을 캔버스 삼아 고독을 물감 삼아 그린 예수의 데스마스크 위로 그가 사랑했던 고인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처럼 작품이 주는 감성에 따라, 관람객들의 얼굴도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곤 한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는 구상적으로 재현된 한 특정 종교성을 넘어서, 다른 종교에서의 신성, 어린이, 영원성과 숭고함을 담고 있는 사람들을 추상적으로 재현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심은록(전시기획자·미술비평가)
[기고-심은록] 종교개혁 500주년 전야… 그가 아직도 울고 있다
입력 2016-12-23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