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 파산 직전의 변호사가 백수가 된 기자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기자의 필력에 끌린 변호사는 자신이 진행해온 재심(再審) 사건들의 이슈화를 부탁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던 기자는 사무실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고등어와 오징어를 구워주며 술을 권하는 변호사의 진정성에 마음을 열었다.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재심 프로젝트가 시작된 순간이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지난 2년간 진행한 재심 프로젝트에 대한 심층 르포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전북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과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재심과 무죄를 각각 이끌어냈다. 또 김신혜 친부 살인 사건은 법원의 재심 개시 여부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재심이란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을 여는 비상구제절차다. 그동안 권위주의 정권 시절 벌어졌던 시국사건이나 공안사건에서는 재심이 종종 있었지만 형사사건에서 재심을 이끌어 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형사사건의 재심을 연다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잘못됐을 뿐 아니라 법원의 판결도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에 소극적이다.
게다가 이들 세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살인범으로 몰린 사법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못 배우고 가난했으며, 일부는 장애가 있었다. 또한 경찰과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는데도 이들은 변호인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다. 재심 판결이 난 이후 그나마 사과를 한 경찰과 달리 검찰과 법원은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재심을 잇따라 이끌어낸 박 변호사와 박 기자는 한마디로 법조계와 언론계의 아웃사이더다. 박 변호사는 전남 섬 출신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군 제대 후 선임과 함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5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학력 경력 인맥이 달리다 보니 로펌에 들어갈 수도 없고 사건 수임도 어려웠던 그는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때 ‘국선 재벌’로 불릴 만큼 돈도 많이 벌었던 그는 경기도 수원 지적장애 노숙 소녀 살인사건을 맡으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2007년 발생한 노숙 소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억울하게 지목된 청소년 4명의 무죄를 2011년 10월 대법원 항소심에서 이끌어 냈다. 국가기관의 개입 없이 재심 결정을 받아낸 첫 번째 중범죄 형사사건이다. 삼례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은 재심 무죄 판결 2호였다.
한편 박 기자는 대학 졸업 뒤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우연히 오마이뉴스 기자가 됐다. ‘기자는 소속 매체가 아닌 기사로 말한다’는 마음으로 사표를 쓴 뒤 박 변호사와 함께 재심 시리즈 3부작을 진행했다. 전형적 글쓰기 수업을 받지 않아서인지 그가 연재하는 기사는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덕분에 지난해 1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다음 스토리펀딩에 기사를 연재해 독자들의 자발적 후원금 1억4000만원을 모았다.
하지만 박 변호사와 박 기자 모두 고등어를 구워 먹을 때보다 형편이 더욱 나빠졌다. 전국을 오가며 사건 관련자들을 취재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펀딩으로 모금한 돈을 유가족들과 사건 피해자들에게 많이 건넸다.
결국 가족까지 딸린 박 변호사는 물론 독신인 박 기자도 올들어 파산 위기에 몰렸다. 두 사람은 지난 8월 11일 새 스토리펀딩을 시작했다. 박 기자는 박준영 변호사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이전 스토리펀딩보다 뜨거웠다. 사흘 만에 목표 후원금인 1억원을 넘기더니 11월 11일 마감됐을 때는 5억6797만8000원으로 다음 스토리펀딩 역사상 최고 후원 액수를 기록했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공권력과 법이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아프게 보여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고군분투를 보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새로운 재심을 준비 중인 두 사람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고 말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책과 길] 살인 누명 벗겨 주는 아웃사이더 2인의 분투
입력 2016-12-22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