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영(가명·10·여)이는 21일 아침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엄마가 흔들어 깨워야 오전 9시쯤 겨우 일어나던 가영이는 오전 7시부터 혼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이날은 가영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공연 무대에 오르는 날이다.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사단법인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와 함께 지난 한 달 동안 아이들이 롯데월드 가든스테이지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공연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해 왔다. 소아암을 앓는 23명의 아이들과 이들의 형제자매들까지 모두 32명이 공연을 준비했다. 무대에 오르고 싶은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기획됐다.
모집 공고를 본 엄마가 가영이에게 ‘무대에 서보고 싶으냐’고 물어보자 가영이는 “꼭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가영이는 네 살 때 소아암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모두 9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에 전념하느라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면역력이 약한 탓에 사람이 많은 장소도 피해 왔다. 가영이에게 외출은 ‘병원 가는 날’이 전부였다. 그래서 가영이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건 그동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다른 소아암 환아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공연 참가가 확정되자 아이들은 무대에 오르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집에서 동영상을 보면서 노래와 율동을 연습했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두 차례 모여 리허설까지 했다.
집과 병원만 오가던 아이들이 무대에 서면 어떤 모습일까. 공연은 ‘신데렐라의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캐럴 등을 더한 무대였다. 30분 분량의 공연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에 아이들이 빨간색 망토를 두르고 올랐다. 아이들은 외국 무용수들과 함께 캐럴 ‘오 홀리 나잇(oh holy night)’을 불렀다.
3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환아들에게는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1200개 관객석도 가득 찼다. 관객석 앞쪽에 자리 잡은 아이의 부모들은 일제히 휴대전화와 캠코더를 꺼내 촬영했다. 무대에 오른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도 있었다. 가영이 엄마도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히 노래 부르는 아이를 보니 울컥했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관객들에게 “소아암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 무대 마지막을 도와줬다”고 소개했다. 관객들은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무대에서 내려온 가영이는 “처음이어서 떨렸는데 재밌었다. 올해 최고의 날”이라고 했다. 엄마는 가영이에게 “치료가 끝나면 또 놀이공원에 같이 오자”고 약속했다. 천진욱 협회 사무총장은 부모들에게 “무대에 오르기까지 많은 노력을 한 환아들의 용기가 병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판 기자 pan@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
성탄절 앞둔 ‘천사들의 합창’
입력 2016-12-21 18:42 수정 2016-12-21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