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사진) 유엔 사무총장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반 총장은 2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특파원들을 만나 “미력한 힘이지만 국가 발전을 위해 나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몸을 사리지 않겠다”고 말해 출마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특히 신중한 발언이 몸에 밴 외교관답지 않게 ‘몸을 불사르겠다’는 식의 과감한 표현으로 대권의지를 드러냈다.
반 총장은 자신의 발언이 출마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오는 31일까지 총장 임기가 남아 있어 그런 말을 하기 어렵다”면서도 “제 말씀을 잘 해석하시면”이라고 말해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민 뜻이 가장 중요하다. 총장 때 경험이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 한 몸을 불살라서라도 그 길로 갈 용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입당할 것이냐”는 물음에 “앞으로 어떻게 기여할지는 깊이 고뇌해 보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다만 “정치라는 게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1월 중순 귀국한 뒤 각계 지도자들을 만나보고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에는 “국가원수로서 당연히 만나야 하지만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돼 있어 대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등 3부 요인을 예방해 귀국신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최근 최순실 사태를 얘기하다 ‘선정(善政)의 결여가 국민의 신뢰를 배신했다’고 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박 대통령을 포함한 특정인을 언급한 게 아니라 국민 바람과는 다른 국가 운영시스템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친노무현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비판한 데 대해선 “나에 대한 인격모독이다. 2011년에 묘소를 참배했고 권양숙 여사한테 안부 전화도 드린다”고 반발했다.
반 총장은 오후 뉴욕총영사관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도 “앞으로 뭘 할지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다 공감할 것”이라면서 “나의 경험이 도움 된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몸을 불사르겠다”고 거듭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반 총장 발언에 친노계와 더불어민주당은 강하게 비판했다. 친노계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 총장은 자신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현직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서거 2년 뒤에야 몰래 참배했다”면서 “권 여사한테 안부 전화를 드린다는 말은 민망스럽기 그지없다”고 비난했다. 또 “중부권 대망론과 친박근혜계의 추대론을 은근히 즐기다 탄핵 바람이 불어오니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면서 “기회주의적이며 아예 정치에 기웃거리지도 말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대변인도 “반 총장은 전광용의 단편소설 ‘꺼삐딴 리’에 나오는 시류에 편승한 기회주의자 이인국을 연상시킨다”고 맹비난했다.
반면 정진석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반 총장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고, 국민의당 김동철 비대위원장도 “우리와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전석운 특파원, 이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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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냐… 각계 만날 것” 반기문 대권의지 ‘직설 화법’
입력 2016-12-21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