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선자령의 하얀 속삭임, 내년엔 희망을 가지세요

입력 2016-12-22 04:01
강원도 평창의 백두대간 선자령 능선 위로 아침 해가 붉은 빛을 토하며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바람의 언덕 위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붉은 빛을 머금은 하얀 설원 위에서 한 여행객이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강릉 시내와 백두대간을 조망할 수 있는 새봉 전망대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눈꽃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는 등산객(위), 눈보라가 휘날리는 양떼목장 내 통나무 움막(아래.)
금천회관의 물갈비
우리 땅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구간 중에 강원도 평창에 이르면 이국적인 풍광을 펼쳐놓는 아름다운 언덕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들이 갖고 있을 법한 큼지막한 바람개비가 능선마다 올라앉아 세차게 도는 곳. 바람의 언덕 선자령(1157m)이다.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대관령은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30㎝ 이상 펑펑 쏟아졌다. 눈이 소복이 쌓인 날 '겨울왕국'으로 눈꽃여행을 떠났다.

눈과 바람의 나라, 선자령

영서지방의 대륙편서풍과 영동지방의 습기를 머금은 해풍은 대관령 고원의 냉기류와 만나 눈을 만든다. 이 눈은 사방 수 백리에 펼쳐진 고원을 하얗게 물들이며 겨울마다 설국을 연출한다.

설국에 선자령이 우뚝 솟아 있다. 강릉과 평창의 경계에 선 봉우리로, 높이만 보면 해발 1000m를 훌쩍 넘기 때문에 겨울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위압적이다. 하지만 산길 초입인 대관령 고갯마루가 832m여서 정상과의 표고차는 마을 뒷산 정도인 325m에 불과하다. 여기에 산길이 크게 가파르지 않은 데다 주변에는 완만한 목장이 자리하고 있어 초보자도 장비만 철저히 준비하면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덕분에 선자령은 겨울 눈꽃 트레킹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정상에 서면 사방의 높고 낮은 산들의 물결을 감상할 수 있는 백두대간 전망대다.

옛 영동고속도로 상행선휴게소 주차장에서 대관령 정상쪽으로 이동하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큰 길을 만난다. 강릉항공무선표지소까지 이어진 콘크리트 길을 따라 걷다 KT통신중계소를 지나 무선표지소 100m 못미치는 곳에서 본격적인 산행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선자령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왼쪽으로 난 길에 들어서면 무릎 깊이로 쌓인 눈과 눈꽃이 핀 크고 작은 전나무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출해 동화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 듯 황홀하다. 모퉁이를 돌면 겨울왕국의 엘사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다. 이곳은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다.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꽃밭이고 겨울에도 새하얀 눈꽃이 피어나니 말이다.

산등성이엔 물살처럼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의 윤곽이 뚜렷하다. 바람이 휩쓸고 가는 곳의 나무들은 자신의 키를 낮추고 있다. 바람결을 따라 질서 있게 누웠다. 길은 대부분 이렇게 키 작은 나무 사이를 지난다. 길 옆 움푹한 곳은 눈이 쌓여 허리춤까지 빠진다.

무선표지소를 에둘러 지나면 갈림길이다. 다소 가파르지만 오른편으로 올라야 반원형의 데크로 단장한 새봉전망대에 다다른다. 강릉 시내와 동해의 파란 물결, 대관령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방금 지나쳐 온 원반형 우주선 형상 또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갓 모양을 한 무선표지소 구조물이 지척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눈을 돌리면 남쪽으로 능경봉∼고루포기산, 북쪽으로 황병산∼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줄기는 한폭의 수묵화를 그려낸다.

전망대에서 선자령 정상까지는 2.5㎞. 평소 40여분 소요되지만 방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으면 금세 동태가 될 정도의 칼바람이 부는 고행의 길이다. 설원을 스쳐온 고약한 찬바람은 코를 얼어붙게 하고 귀를 찢을 듯하다. ‘한국의 히말라야’나 다름없다. 얼굴은 얼얼하지만 그 어느 계절의 트레킹보다 매력적이다. 차디찬 흰 눈은 오히려 아늑해 보인다. 모든 걸 다 묻어줄 것 같은 순백이 위안을 안겨준다.

벌거벗은 나무와 흰 눈뿐인 숲을 지나자 길은 평평해지고 은세계 너머로 능선과 능선이 치맛자락 펄럭이듯 물결친다. 왼편으로 대관령하늘목장(옛 한일목장)의 설원이 펼쳐진다. 하얀 소복 입은 능선 위에 육중한 몸짓으로 바람에 맞서 큰 원을 그려대는 풍력발전기들이 ‘윙윙’ 거친 소리를 내뱉는다. 바람이 훑고 간 반질반질한 눈밭은 햇빛에 은빛 투구마냥 반짝거린다. 이윽고 도착한 ‘바람의 봉우리’. 선자령 꼭대기에는 백두대간을 표시한 산경표가 거대한 돌에 새겨져 정상을 지키고 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이곳까지는 5㎞. 평소 3시간 정도 거리지만 눈길을 헤치고 경치를 감상하느라 4시간가량 걸렸다.

아름다운 겨울을 즐길 수 있는 곳, 하늘목장

하늘목장은 겨울에도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 가장 주목받는 것이 새해 하늘목장∼선자령 해돋이 여행이다. 일반인에게 처음 개방하는 행사다. 해돋이 코스는 목장길을 따라 트랙터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트랙터마차는 하늘마루전망대까지 운행된다. 이 곳은 풍력발전기와 백두대간 자락이 어우러지는 일출을 감상할 수도 있는 곳이며, 선자령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겨울 산행의 로망인 선자령까지 가장 빠르고, 색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약 40분 걸린다.

하늘목장∼선자령 해돋이 여행에서 볼 수 있는 일출은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동해안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일출 직후 하늘목장의 아름다운 길과 풍력발전기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해돋이 코스의 덤이다. 입장료, 트랙터마차 이용료, 따뜻한 음료로 구성돼 1만1000원이다. 하늘목장 홈페이지에서 신청가능하다.

독특한 겨울체험거리도 많다. 남녀노소, 연령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동심에 젖어들 수 있는 비료포대 눈썰매장이 마련돼 있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안겨준다. 양떼가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평화로운 목가적인 분위기는 만날 수 없지만 우리 안에 있는 양들에게 먹이 주는 체험은 할 수 있다. 인근 양떼목장도 둘러보자. 전망 좋은 언덕에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 세트장으로 쓰였던 통나무 움막 한 채가 인상적이다.

■여행메모
겨울 산의 매력 즐기려면 철저한 준비 필수, '황태 고장' 횡계리의 색다른 별미 '물갈비'


선자령 트레킹은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에서 시작한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나들목(옛 횡계나들목)에서 빠져나와 456번 지방도를 타고 찾아가면 된다.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약 3시간 소요된다.

대관령 아래 옛 영동고속도로 주변에 펜션이 즐비하다. 횡계리의 대관령호텔(033-335-3301)은 깔끔한 것이 장점이다. 황태 본고장인 만큼 황태회관(033-335-5795) 등 황태요리 전문점이 많다. 대관령 덕장에서 생산된 황태는 통통하고 껍질이 붉은 황색의 윤기를 띠며 부드러운 육질을 지닌다. 횡계리의 또 다른 별미인 물갈비도 인기다. 횡계리의 금천회관(033-335-5103)은 1인분 1만1000원에 푸짐한 반찬과 함께 맛난 물갈비를 내놓는다.

눈길 트레킹은 겨울 산의 매력을 만끽하게 해 주지만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눈이 많이 온 뒤 맑은 날을 골라 떠나야 제대로 눈꽃을 감상할 수 있다. 평소 산행 경험이 있는 산으로, 여럿이 떠나는 게 좋다. 방수가 되는 등산화는 물론 아이젠, 스패츠, 등산 스틱, 방한모, 방한장갑, 윈드재킷, 다운재킷, 칼로리 높은 행동식(초콜릿, 양갱 등), 뜨거운 물 등이 필수다. 소요시간도 평소보다 1.5배 이상 잡는 게 좋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휴대전화 배터리도 여유 있게 준비해야 한다.












선자령(평창)=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