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 어릴 적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가 ‘마이크로 결사대(fantastic voyage)’였다. 공상과학영화인 ‘마이크로 결사대’는 뇌사상태에 빠진 과학자를 구하기 위해 실제 특수부대원들과 잠수함을 백혈구 크기의 마이크로 단위로 축소해 혈관에 투입해 뇌의 응혈을 제거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나노로봇이 혈관을 뚫어 동맥경화를 치료하고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찾아 없애는 것을 보니 그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되는 기술적 진보에 다시 한번 전율을 느낀다.
나노는 흔히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로 표현될 만큼 매우 작은 단위다. 하지만 나노의 기술적 파워는 그 어떤 분야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분자 단위에서 물질을 조작해 새로운 첨단 소재를 만들고, 기존 소재의 성능을 대폭 끌어올리는 등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다. 한 예를 들자면 ICT에 나노기술을 접목한 덕분에 수백억원대 슈퍼컴퓨터에서나 구현이 가능했던 테라바이트급 데이터 용량이 이제는 10만원짜리 외장하드에서도 손쉽게 가능해졌다.
또한 세계 최초 10나노급 D램 양산 성공에서도 볼 수 있듯 ‘반도체산업은 곧 나노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나노 기술 없이는 진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렇듯 나노기술은 국가산업의 기초체력으로 불리는 제조업 혁신의 원동력으로 굳게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 추진한 ‘나노융합 2020사업’ 누적 매출이 2000억원을 돌파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나노기술과 정보기술, 환경기술의 융합 성과가 빠르게 산업계에 도입,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줘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정부는 ‘나노기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때부터 발 빠르게 연구와 투자를 집중적으로 지원해 왔다. 현재는 세계 4위권 나노기술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2001년에 제1차 나노기술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올해 초에 제4차 계획까지 발표한 바 있다.
특히 4차 계획을 수립할 당시 정부는 정책 초점을 ‘나노기술 사업화 촉진 및 나노 생태계 활성화’로 설정해 나노전자소자, 나노바이오기술 등에 집중 지원하고, 나노기술·나노산업의 중요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는 계산나노과학 플랫폼 구축을 통해 사용자들이 시공의 구애 없이 손쉽게 계산과학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또한 나노기술 발전을 위한 선제조건인 나노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제 공동 연구도 활발히 추진해 오고 있다.
나노기술은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핵심적 원천기술이다. 나노산업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일자리의 핵심 산업이 될 것이다.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권기구가 나노기술을 3D 프린팅 기술, 로봇기술과 함께 미래 글로벌 경제 성장을 이끌 3대 기술로 선정한 것도 주목해볼 내용이다. 2020년쯤 세계 나노산업 시장 규모가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할 정도이니 나노기술의 산업적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증대될 것이다.
정부는 나노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든 정책 역량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미래 반세기 내에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도록 나노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힘써 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나노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꺼지지 않는 연구실 불빛 아래 밤을 지새우는 현장 연구자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자양분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기고-홍남기] 나노 기술, 미래성장의 동력
입력 2016-12-21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