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부인의 진술, 일본산 석채 안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적외선으로 촬영한 밑그림.
검찰은 이를 근거로 25년 묵은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진위 논란에 ‘진짜’라는 답을 내놨다. 프랑스 감정단의 ‘가짜’라는 수학적 분석보다 국내 과학감정 결과와 관련자 진술 조사에 우위를 뒀다.
검찰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의 부인을 수소문 끝에 접촉해 직접 조사했다. 부인은 “오○○ 대령의 처한테서 그림을 받았다. 미인도가 맞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정 대구분실장이던 오모씨의 부인에게서 77∼78년쯤 미인도를 선물로 받았다는 얘기다. 두 여성은 숙명여대 동기로 친구 사이다. 오씨는 이후 화랑을 운영할 정도로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77년 천 화백에게 미인도 등 그림 2점을 구입했었다. 검찰은 김씨 딸과 사위에게 “서울 보문동 자택 응접실에 걸려 있는 걸 봤다”는 진술도 받았다. 미인도는 80년 계엄사령부가 헌납받아 재무부,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 25년간의 위작 시비는 정작 그림이 수장고 안에 보관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다.
검찰은 미인도에 쓰인 일본산 석채(천연 돌가루)를 주목했다. 70년대만 해도 국내 화단(畵壇)에서는 왜색풍이라는 이유로 석채 안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석채는 일본에서 직접 알음알음 구해야 했던 데다 가격이 비쌌다. 이를 아교, 백반과 배합하는 데도 고난도 기술과 훈련이 필요해 아무나 사용할 수도 없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천 화백과 제자 외에 석채를 쓰는 화가는 찾기 드물었다고 한다. 위작자로 자처했던 권춘식씨도 미인도 실물을 보더니 “도저히 따라 그릴 수 없는 수준이다. 석채 자체를 다룰 줄 모른다”고 털어놨다. 위작의 주체가 사라진 셈이다.
검찰은 국내 여러 기관에 과학감정을 맡겼지만 결정적 단서는 국과수 조사에서 나왔다. 국과수는 자외선·X선 및 투과광사진 촬영을 통해 미인도의 밑그림을 발견했다. 밑그림은 올 들어서야 외부에 공개된 ‘차녀 스케치’(76년)와 기본 구도, 세부 표현 방식이 유사했다. 수사팀도 이 밑그림을 본 뒤 진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천 화백이 차녀 스케치를 바탕으로 미인도와 ‘장미와 여인’(81년)을 완성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미인도 밑층에는 천 화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위험한’ ‘종일 울었다’ 등의 글씨들도 있었다. 당시 천 화백의 수필에서도 이와 유사한 글귀들이 보인다고 한다. 유족 법률대리인단은 해외 감정의 권위를 내세워 “검찰의 진품 판단은 근거가 없다”며 반박했다. 위작이라는 감정 보고서를 냈던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는 21일쯤 한국 검찰의 발표에 대한 성명을 낼 예정이다.
지호일 노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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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미인도’ 佛 감정 결과 뒤집고 ‘진품’ 판정 이유는 (1)출처 확실 (2)희귀 재료 (3)밑그림 존재
입력 2016-12-21 0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