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 수준으로 번지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을 진정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현재로선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그나마 최선의 대안으론 ‘기본에 충실한 방역 재실시’와 ‘백신 개발’ 등이 꼽혔다. 국민일보가 20일 전국 수의과대학 AI연구 전문교수 4명에게 문의한 결과다.
정부도 이날 백신을 제조할 수 있는 항원뱅크 구축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준비 절차 등을 감안하면 올겨울에 실제 사용하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경북대 이영주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미 감염이 됐던 안 됐던 모든 농가가 적극적으로 다시 기초적인 방역작업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국대 류영수 교수 역시 “AI가 상시화되면서 방역에 대한 중요도를 정부도, 농가도 간과한 게 문제였다”면서 “방역의 플랜A가 실패하면 플랜B나 플랜C가 있어야 하는데 차선책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바이러스 전파 경로의 대부분이 차량인 만큼 차량 통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건국대 송창선 교수는 “농장 전파의 70∼80%는 차량 전파”라며 “계란 운반 차량의 바퀴만 소독하는 방식으로는 깨진 계란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에서 매뉴얼대로 방역이 잘 되고 있는지 감시·감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AI 백신’ 사용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렸다. 충남대 서상희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대안은 백신밖에 없다”면서 “백신 없이 현 방역시스템만으로는 살처분되는 가금류 수가 1억 마리에 육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류 교수는 “방역의 플랜B나 플랜C로 백신이 준비돼 있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백신이 효과적인지 아니면 부작용이 더 클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시도하는 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백신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4명의 전문가는 모두 인체 감염을 우려했다. 송 교수는 “가장 위험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살처분 동원인력”이라며 “살처분이 지연되면 AI 위험성이 커지고 그 와중에 사람이 감염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했다. 서 교수는 “몸 전체에 AI 수용체가 깔려 있는 가금류와 달리 사람은 폐 깊숙이 수용체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확률은 낮지만 이론상 인체 감염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는 브리핑을 갖고 “H5N6형의 종독주(Seed bank)를 확보한 상태”라며 “긴급 상황에 대비해 백신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항원뱅크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AI 사태에서 백신을 사용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박봉균 본부장은 “이번 H5N6형 백신 준비에 최소 3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겨울이 끝나면 AI가 종료되기 때문에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내부적으로 백신 접종을 검토했지만 좀 더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키로 한 상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 베트남 등 AI 백신을 접종하는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인체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축산 선진국들은 대부분 살처분 우선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준비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2014년 AI 사태를 겪은 뒤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까지 항원뱅크조차 구축하지 않은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AI 전문가는 “지난해 11월 중국 리커창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방문해 한국 삼계탕의 중국 수출을 거론하면서 AI 백신 개발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세종·춘천=이성규 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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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농가도 방역 중요성 간과한 게 문제”
입력 2016-12-21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