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중앙지법 508호 법정.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로 구속 기소된 강만수(71) 전 산업은행장이 하늘색 수의 차림으로 피고인석에 섰다.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특별히 재판장님을 만났으니…”라고 운을 뗀 그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저는 1998년 외환위기 때 차관으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장관으로 조국을 위해 온몸 바쳐 일했습니다. 구치소에서 보름가량 지내며 제 평생을 바친 이 조국을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통곡하고 싶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강 전 행장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지위를 이용해 지인 회사에 특혜를 주거나, 공무원에게 압력을 행사하거나, 뇌물을 받았다는 거다. 이 중 남상태 당시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압박해 지인 회사에 투자하게 한 혐의가 검찰에 포착돼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그럼에도 “땅 한 평, 주식 하나 산 게 없고 명품도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이 재판에 저를 믿고 따른 부하들과 제가 한 일의 평가가 달려 있다”고 강변했다.
유무죄 판단은 재판부 몫이다. 다만 강 전 행장이 언급한 공직 평가 부분은 짚어보고 싶다. 그는 97년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외환위기를 불러온 책임자 중 한 명이다. 이후 10년간 공직을 떠났다가 2008년 이명박정권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기업프렌들리라는 말을 만들고 747정책을 짰지만,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원 없이 돈 썼다”고 했을 정도로 고환율 정책을 구사해 서민경제를 파탄시키고 나라 곳간을 축냈는가 하면 중소기업을 위기로 몬 키코(KIKO) 사태를 유발했다. 그러고도 산업은행에 낙하산으로 임명돼 대우조선 등 조선산업을 무차별 지원하고 지금의 구조조정 사태를 만들었다. 검찰은 대우조선 지원 배경에 불법이 있었다고 판단해 그를 구속 기소했다.
강 전 행장은 “최근 대우조선 사태는 마음 아프지만 제 업무의 1%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1%라는 수치에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 관여는 1% 미만” 주장이 떠오른다. 1% 부인(否認)이 유행이 될까 우려스럽다. listen@kmib.co.kr
강만수의 씁쓸한 ‘1% 否認’
입력 2016-12-20 19:01 수정 2016-12-21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