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돌진… ‘니스 트럭 테러’ 판박이

입력 2016-12-20 18:35 수정 2016-12-21 01:00
터키 경찰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가 19일 오후 7시쯤(현지시간) 앙카라 현대미술관에서 안드레이 카를로프 주터키 러시아대사를 사살한 뒤 “시리아와 알레포를 잊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 일대는 반군이 장악해 왔으나 최근 러시아의 지원으로 정부군이 탈환했다. AP뉴시스
지난여름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에서 벌어진 ‘트럭 테러’가 이번엔 독일의 심장인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서 재연됐다. 성탄절을 앞두고 선물을 준비하던 일반 시민들을 표적으로 삼은 전형적인 ‘소프트 타깃’ 테러다.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했다. 당초 용의자로 지목됐던 파키스탄 출신 난민이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돼 추가 테러 여부 때문에 독일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독일 디벨트와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19일 오후 8시14분쯤(현지시간) 베를린 서부 중심 쇼핑가인 쿠담거리 브라이트샤이트 광장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마켓’에 19t 대형 트럭 한 대가 돌진했다. 시속 65㎞로 50∼80m를 질주하면서 물건을 사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달려들었다.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부서진 가판대 사이로 시민들이 깔렸고 일부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확인된 사망자는 12명이지만 중상을 입은 사람이 많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건을 난민이 일으켰다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유명 관광지다. 쇼핑몰과 호텔, 역사 유적인 카이저 빌헬름 메모리얼 교회 등이 모여 있다. 1895년 세워진 교회는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됐다가 전쟁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받들어 폭격당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인근에 티어가르텐 공원과 베를린 동물원도 있어 가족 단위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작은 유토피아’로도 불리는 곳이다.

독일에선 전통적으로 12월 초부터 성탄 전야까지 마을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전통 음식과 공예품, 액세서리나 크리스마스 장식 등을 가판에서 판매하는 소박한 축제 형식이다. 사건 당시 마켓에 시민과 관광객이 몰렸고 이들을 노리고 트럭이 돌진한 것이다.

이번 테러는 지난 7월 14일 니스에서 벌어진 ‘트럭 테러’를 그대로 닮았다. 당시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연휴를 맞아 축제를 즐기던 인파 사이로 대형 트럭이 지그재그 형태로 돌진하면서 86명이 숨졌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다.

수사 당국은 현장에서 2㎞ 떨어진 곳에서 남성 용의자를 체포했다. 독일 RBB방송은 23세의 이 남성이 ‘나베드 B’라는 이름의 파키스탄 출신 난민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31일 독일로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경찰에서 범행을 부인했으며 현지 경찰도 이 남성이 범인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디벨트도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엉뚱한 사람을 체포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트럭 내 보조석에서 발견된 폴란드 국적의 또 다른 탑승자는 사망한 채 발견됐다. 영국 일간 미러는 숨진 이 남성이 살해됐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범행에 사용된 트럭은 폴란드 철강제품 회사에 등록된 차량이었고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가 이탈리아에서 베를린으로 오던 트럭을 훔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탄과 새해를 앞두고 유럽 국가들에 테러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영국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지난주 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루트비히스하펜 지역 크리스마스 마켓에 12세 소년이 폭탄을 터트리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미국 국무부도 성탄절 기간 유럽에서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독일 정부의 대테러 정책이 미흡했다는 비난이 함께 나온다.

난민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던 메르켈 총리는 최근 총선을 준비하며 다소 엄격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번 사건으로 메르켈이 추진해 온 난민 포용책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은 한층 분명해졌다. 내년 9월 총선에서 메르켈의 4선 달성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