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모신 시모가 돌아가신 지 3주가 넘었지만 아직도 정리할 게 남아 있다. 묵은 살림 치우기도 만만치 않지만, 사무실 규모를 줄이느라 집으로 이사 온 책들도 골치였다. 이사를 거듭하면서 도서관과 헌책방에 여러 번 책을 갖다 주었다는 사실이 무색하다. 시어머님이 사지가 마비된 채로 마루에 누워 계셨던 근 2년 동안 기본적인 살림만 하며 살았으니, 곳곳이 허술하게 방치되기도 했었다. 심장이 나빠진 몇 년 전부터는 금방 숨이 차고 피곤한 탓이라는 구차한 핑계를 대며 청소가 가장 힘들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사실 원래부터 청소를 썩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며 산다.
첫째는 물건 사지 않기.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만으로도 살림이 차고 넘친다. 30년 넘게 살림하면서 그릇 세트 한 번 사본 적이 없다. 돈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백화점만 가면 미세먼지와 소음 때문인지 머리가 아프고, 쇼핑할 시간이 없어서 지키기 쉬운 원칙이다. 두 번째는 모든 물건은 원래 있던 제 자리에 놓기. 물론, 제일 잘 지키는 것은 주부인 나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가족들이 많이 협조를 해 주고 있다. 세 번째는 그때 그때 일 해치우기. 화장실 변기나 세면대, 싱크대는 특히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릇이 쌓여 있으면 훨씬 더 일이 힘들고, 변기와 화장실은 매일 닦지 않으면, 그야말로 청소가 불쾌해진다.
네 번째는 분류 미루지 않기.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빨래는 빨래 통에, 옷은 옷장에, 라는 원칙뿐 아니라 서랍 속이나 장 속에 작은 상자 같은 것을 이용해 종류별로 나누어 놓아야 찾느라 쩔쩔매지 않는다. 책 역시 분야별로 나누지 않으면 어디에 있는지 몰라 글 쓸 때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물론 정기적으로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금방 혼란스러워지지만. 다섯 번째는 시간 관리. 살림하고 싶을 때 천천히 할 수 있을 만큼 내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전화를 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 걸레를 들고 책장이나 가구 같은 것을 닦는다든가, 남들 화장하고 머리하는 시간에 화장실 청소를 한다든가, 일요일 늦잠 대신 청소하고 정리하는 식이다. 여섯 번째는 가족들의 참여다. 예전에 시어머님이 기운이 좋으셨을 때는 “어차피 어질러질 거 뭐 하러 치우느냐. 남자가 왜 집안일을 하느냐”고 하셨기 때문에 항상 청소와 집안일이 나 혼자 차지였지만, 점점 더 가족이 많이 돕게 되어 예전에 비하면 일이 많이 줄었다. 노동은 같이 하면 재미있고 보람 있는 축제지만, 누군가 혼자 몽땅 뒤집어쓰면 억울하고 분한 착취다.
이런 원칙들에도 불구하고 집이나 사무실 어딘가 먼지가 숨어 있다 나타나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로 주변도 자주 지저분해진다. 특히 일이 한꺼번에 밀어닥칠 때에는 복잡한 내 마음만큼 책상이나 부엌 선반이 엉망이 된다. 집안일은 마치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끝났나 싶으면 다시 몰려오곤 하지만, 그래도 시작만 하면 끝이 있는 것이라, 나름대로 뿌듯할 때도 많다.
천년만년 살 것이 아니니, 물건에 대한 집착은 확실히 부질없고 해로운 일이겠지만, 깨끗하고 정리된 공간에서 살려는 욕심마저 버려야 할까. 탄핵 정국으로 어지러운 와중에 쓰레기봉투값이 참 많이 인상되었다.
초겨울 날선 바람으로 어지러운 낙엽들도, 간밤의 취객들로 더럽혀진 거리도, 하루 밤만 지나면 말끔하게 단장이 되는 광경을 볼 때마다, 그 많은 쓰레기를 치우고 계시는 환경미화원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리고 싶다. 제 한 몸 깨끗한 것만 생각하며 세제 한 번 안 묻히고 살아 야들야들한 손에 비해, 청소와 빨래로 거칠어진 손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가!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청사초롱-이나미] 청소의 법칙
입력 2016-12-20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