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과 7일 연거푸 덮친 폭풍우로 ‘아프리카의 스위스’ 스와질란드 남부 솜통고는 쑥대밭이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마른 들판 곳곳엔 풀 한포기 구경하기 힘들었고, 소와 양 등 굶어 죽은 가축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하늘만 바라보고 발만 동동 구르던 사람들에게 하늘은 야속하게도 폭우를 퍼부었다.
말라버린 물웅덩이, 파리만 윙윙
지난 6일(현지시간) 오전. 에진드웬드웨니 초등학교 운동장에 대구 푸른초장교회 임종구(48) 목사 등 국제구호개발옹호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 ‘밀알의 기적’ 봉사단이 도착했다. 수업을 받던 1학년 시나무 겔레(7)군은 “열심히 공부해 악당을 잡는 경찰관이 되겠다”고 했다. 360명의 학생들에게 임 목사는 연필과 노트 크레용 등 학용품, 축구공 배구공을 선물했다. 33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이었지만 학생들은 전통춤으로 임 목사 일행을 환영했다.
대기시간을 포함해 꼬박 25시간 동안 항공기와 차를 타고 달려온 임 목사 일행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잠시였다. 루레키웨니 공동우물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산비탈 길을 20여분 걸어 도착한 물웅덩이엔 물 한 방울도 없었고 가축의 배설물 위에 파리만 윙윙거렸다.
다음 날 오전엔 폭풍으로 지붕이 폭삭 무너진 에체니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 인근 ‘엘루세 그웨니(웃음이 있는 곳)’마을에서 47세 할머니와 사는 샨샤(6)는 영양결핍 때문에 배가 배구공만큼 불룩했다. 송충이를 끓여먹는다고 했다. “배고픈 게 가장 힘들다”는 그녀가 페인트통 뚜껑을 열어보였다. 소름이 끼치는 송충이가 득실거렸다.
월드비전 솜통고 지역본부장 펫실레 마실레라(38)는 “이렇게 송충이를 잡아 연명하는 주민들이 늘어 가슴이 아프다”며 “옥수수 가루도 없고 마실 물도 없이 이 산골에서 어떻게 목숨을 이어가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임 목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후원을 약속한 아동은 따로 있었지만 즉석에서 조손가정을 돕는 후원자가 됐다. 샨샤는 임 목사가 내민 학용품이 든 가방을 선물 받을 때까지만 해도 경계를 풀지 않더니, 막대사탕을 받아들고서야 웃었다. 낮 12시쯤 임 목사 일행은 애초에 후원하기로 한 여자아이 노콴다(3) 집으로 향했다. 울퉁불퉁 비포장 길을 한 참 달려 닿은 곳은 공동묘지 끝자락이었다. 세 식구가 살던 토담집은 지난달 화재로 타버렸다. 사탕수수밭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는 노콴다 어머니 잔딜레 들로브(34)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방이 없어 부엌(움막)에서 잠을 자는데 어젯밤엔 뱀이 들어와 난리가 났어요. 돌과 흙으로 집을 다시 짓는 중인데 지붕 덮을 건자재가 없어요.”
임 목사는 목을 잔뜩 움츠린 노콴다를 꼭 안아줬다. 필기구와 노트 스케치북 사탕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등에 직접 메어줬다. 막대사탕을 받아 든 노콴다는 잠이 오는 듯 칭얼거리더니 지붕 없는 땅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주민들 소 1마리씩 기증 고등학교 건립
길가에서 점심을 때운 일행은 저축그룹과 스윙 프로젝트를 추진중인 빔비지부코 마을 공동체를 방문했다. 숨이 막히는 조그마한 컨테이너엔 2명의 학부모가 선풍기 한 대 없이 재봉틀로 아이들 교복과 평상복을 만들고 있었다.
학부모위원회가 내년 개교를 목표로 짓는 팡궤니 고등학교는 솜통고의 희망이다. 148개 가정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매튜 냐후(78) 회장은 “먹고 살기조차 힘든 사람들이 소 한 마리씩 내놔 2500달러를 모았다”며 “고등학교가 세워지면 여학생들이 등·하굣길에서 당하던 불미스러운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웃었다.
오후 ‘그리스도의 제자교회’에서 열린 환영예배에서 200여명의 성도들은 찜통 같은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찬송을 불렀다. “주님, 우리에게 자라날 힘을 주세요(Jesus we need strength to grow).” 교회학교 학생들의 공연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맨 앞줄 왼쪽에서 불편한 다리를 번갈아 딛으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시피워센코시(8) 양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지난 9월에 어머니와 사별한 그녀는 다리가 안쪽으로 휘어진 상태였다. 폭풍으로 지붕이 날아간 단칸방에서 할머니(64)와 사는 그녀는 누구보다 더 신나게 율동하며 찬양을 불렀다.
연단에 오른 임 목사는 사랑을 나누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설교했다. 빈들엔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임하면 척박한 스와질란드 솜통고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눅 9:10∼17)
■스와질란드는 어떤 곳
개신교인이 40%… 남아공·모잠비크 사이 위치, 69%가 빈곤층·각종 질병에 노출돼 도움 절실
스와질란드(Kingdom of Swaziland)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강원도 정도 크기의 입헌군주제 국가다.
국민 중 개신교가 40%, 가톨릭이 20%, 이슬람교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스와질란드에는 강이 많이 흘러가는데 대우수투 강(the Great Usuthu River)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라니냐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다. 국민의 79%가 농업에 의존하며, 폭우로 인한 토지부식과 산불은 농업생산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실업률은 40%에 달하고, 인구의 69%가 빈곤층에 속한다. 농업활성화를 위한 정부 보조금도 크게 감소한 실정이다.
수도는 음바바네. 인구는 약 143만5613명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1/12이다. 우기(10∼3월) 기후는 따뜻하고 습하다. 평균기온은 17∼33℃.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이 늦다. 2014년 유엔개발계획(UNDP)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간개발지수 순위는 187개국 중 148위(한국은 15위)에 불과하다. 평균 수명은 49세, 아동사망률(5세 미만)은 1000명당 80명이다. 하루 1.25달러 이하로 사는 인구가 40.6%나 된다. 성인 문맹률은 12.2%.
남부 솜통고는 대부분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다. 전체 사망원인 중 64%가 에이즈 감염에 의한 것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기초의료 시설에 접근하기 어렵고 기초적인 의료혜택을 잘 받지 못하고 있다. 안전한 식수가 부족하고 각종 수인성 질병에 노출돼 있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이다.
솜통고(스와질란드)=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밀알의 기적 <6·>] 6세 샨샤와 할머니 송충이 잡아 연명… “후원 안 할 수 없었다”
입력 2016-12-20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