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사진) 전 주(駐)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북한에선 고위층을 겨냥한 도청이 일상화돼 북한 엘리트층들이 마지못해 충성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는 밝혔다. 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강압적 공포통치로 고위직 상당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증언했다. 낮에는 북한 정권을 찬양하지만, 밤에는 이불을 덮어쓰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남한을 동경하는 ‘일탈’이 주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도 했다.
태 전 공사는 19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국회 정보위 이철우 위원장 및 여야 간사와 3시간가량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설명했다고 이 위원장이 전했다. 지난 8월 입국 이후 국가정보원 조사를 받아온 태 전 공사는 오는 23일부터 사회 활동을 시작한다.
태 전 공사는 간담회에서 “북한에서는 직위가 올라갈수록 감시가 심해져서 자택 내 도청이 일상화돼 있다”고 말했다. 고위직에 올라가면 엘리트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는데, 그곳에 도청장치가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된 것도 집에 가서 얘기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 전 부장은 지난해 4월 불경죄 때문에 고사포로 공개처형됐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어리기 때문에 통치가 수십년 지속될 경우 자식, 손자 대까지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북한 간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노예 생활을 하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보며 환멸감이 커져 귀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해외 생활을 하면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을 접했고, 한국의 민주화와 발전상을 체감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귀순 당시 자녀들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주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자신이 자금을 횡령한 뒤 처벌이 무서워 도주했다고 비난한 북한 주장에 대해선 “그렇게 모략할 줄 알고 귀순 전 대사관 내 자금 사용 현황을 정산하고, 사진까지 촬영해 놨다”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이어 “북한에선 자본주의식으로 기초생활이 돌아가고 있다”며 “당국의 말보다 자기들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많이 체득하고 있다”고 했다. 또 “(북한에는) 2인자가 없어 김정은만 어떻게 되면 완전히 통일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위 관료들이 남한에 오면 나락으로 떨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정변이 날 때 엘리트들이 중국으로 도망갈까 두렵다”며 “(정부 지원으로) 한국에 와도 괜찮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北선 고위층 겨냥 도청 일상화… 현영철, 집에서 말 잘못해 처형”
입력 2016-12-19 21:24 수정 2016-12-20 00:54